[더구루=김수현 기자]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광산 폐기물인 ‘광미(tailings)’ 관리 문제가 현지 광업 경쟁력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장기 채굴에 따른 원광 품위 하락으로 광미 발생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오는 2035년이면 현지 퇴적장의 수용량이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여 자원화 기술의 상용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6일 코트라에 따르면 칠레의 구리 광산들이 점차 고갈되면서 구리 1톤을 생산할 때 그 200배에 달하는 광미가 발생하고 있다. 원광의 평균 품위가 1% 미만으로 하락하면서 동일한 양의 구리를 얻기 위해 파쇄·가공해야 하는 원석의 양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현재 칠레는 세계 3위의 광미 퇴적장 보유국으로, 누적되는 폐기물 처리가 광업계의 최대 당면 과제로 부각됐다.
칠레 지질광업국 조사 결과 전국 광미 퇴적장은 총 795개에 달한다. 이 중 실시간으로 광미가 유입되는 ‘활성’ 시설은 16%(128개)에 불과하며, 운영이 종료된 ‘비활성’ 시설이 60%(475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관리 주체가 없는 ‘방치’ 상태의 퇴적장도 22%(176개)에 달해 지진이나 집중호우 시 제방 붕괴, 액상화, 중금속 유출로 인한 지하수 오염 등 물리적·화학적 사고에 취약한 실정이다. 이에 칠레 정부는 지질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안정성이 낮은 상류식 공법을 전면 금지하고, 중심축식 및 하류식 공법만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칠레 광업계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수자원 회수를 위해 광미의 수분 함량을 최소화하는 탈수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광미를 여과해 습도를 20% 미만으로 낮추는 ‘여과 광미’ 방식은 공정 수분의 85% 이상을 회수해 재투입할 수 있다. 초기 투자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지 기업들이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이유다.
지능형 모니터링 기술 도입도 활발하다. 칠레 지질광업국은 지난 1월 ‘라 아프리카나’ 퇴적장에 드론 및 차량 탑재가 가능한 3차원 라이다(LiDAR) 기반 스캐너 시스템 ‘엑스그리드(XGrid)’를 도입해 미세한 구조적 변화를 실시간 감지하고 있다.
아울러 광미를 시멘트나 도로 포장재 등 건설 자재로 재활용하는 지오폴리머 기술과 식물로 미세 분진을 억제하는 식생 안정화 기술 등 순환경제 모델도 시도되고 있다. 일례로 안토파가스타 미네랄스는 ‘키야예스’ 퇴적장에 자생 식물 6만4400그루를 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여전히 구조적 장벽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칠레 광업 기술 전문 연구기관인 JRI 지속가능광업연구소의 왈도 아라세나 연구본부장은 "법적으로 광미가 여전히 폐기물로 분류돼 있어 자원화 및 제품화에 제도적 제약이 따르고, 방치된 퇴적장의 경우 소유 관계가 불분명하다"며 "업계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과 규제 체계 정비가 선행돼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칠레는 최근 글로벌 광미 관리 표준(GISTM)을 수용하며 독립 기술 검토위원회 운영 등을 의무화해 실무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아라세나 본부장은 “칠레의 대규모 광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첨단 모니터링 및 재처리 분야에서 한국의 혁신 기술 역량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IoT·AI 기반 모니터링 솔루션이나 친환경 자원 회수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칠레 시장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