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현수 기자] 위고비로 대변되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에 '암 억제 가능성'이 거론되며 소비자와 투자자들 관심이 뜨겁다. 비만치료 제약업계에서는 체중 감량 효과만으로 맞붙던 1라운드에서 더 나아가, 얼마나 많은 질환 영역에서 임상 근거를 쌓는지 '적응증 확장'이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시장 최상위인 두 제약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와 일라이 릴리(Eli Lilly, 이하 릴리)도 각자의 영토 확장 전략을 가속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암 억제 '가능성' 등장
1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에서 집중 발표된 GLP-1 계열 약물의 항암 가능성을 다룬 연구 5편에 관련 업계와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번 학회에서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 마크 올랜드(Mark David Orland) 박사 연구팀은 비만 관련 암 7종 환자 1만2000여명의 실제 진료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GLP-1 계열 약물 복용 환자가 △폐암 △유방암 △대장암 △간암 등 4개 암종에서 전이성 암으로 진행될 위험이 의미 있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 분야 별도 연구도 주목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에이브럼슨 암센터(University of Pennsylvania Abramson Cancer Center) 엘리자베스 맥도널드(Elizabeth McDonald) 교수팀이 45~80세 과체중·비만 여성 11만1646명의 건강 기록을 분석한 결과, GLP-1 계열 약물 복용 여성의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 대비 약 30% 낮았다.
다만 관련 연구는 모두 후향적 관찰 연구로, 인과관계 증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중론이다. 비만치료 제약사 관계자는 "ASCO에서 발표된 데이터는 GLP-1 계열 약제가 암 전이 진행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암 억제 '가능성'이 제시된 것을 유의미하게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비만치료 제약사 관계자는 "암과 관련된 효과는 아직 초기 연구단계"라며 "환자 안전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환 영역에서 치료의 잠재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방암 연구를 진행한 맥도널드 교수도 "관찰 연구로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비만치료제를 암 예방 도구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비만치료제, 다양한 질환 '적응증 확장' 새로운 경쟁력 주목
비만치료제 시장에서는 암 억제를 포함한 다양한 질환으로의 적응증 확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전통 비만치료제 강자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를 통해 대사질환 전반으로 적응증 확대를 가속하고 있다. △심혈관 고위험군 △만성신장질환(CKD) △대사이상지방간염(MASH) 등에서 잇따라 허가를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만성신장질환 대상 2상 임상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아 부산대병원·서울성모병원 등 6개 기관에서 진행 중이다.
제형 확장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세마글루타이드 25㎎ 경구제, 이른바 '먹는 위고비'를 승인했다. 64주 임상에서 평균 16.6%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자가주사 부담을 낮춘 경구제가 신규 환자 유입을 촉진할 것이라고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는 GLP-1과 인슐린분비자극펩타이드(GIP)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 기전을 내세워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위고비와 직접 비교한 임상 3상에서 마운자로 투여군은 72주차 평균 체중 감소율 20.2%를 달성해 위고비 투여군(13.7%)을 앞섰다.
적응증 확장 전선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 비만 동반 중등도·중증 폐쇄성 수면무호흡 치료제로 추가 허가를 확보했으며, 3상 파이프라인으로 △심혈관질환을 동반한 비만 환자 △1형 당뇨 환자 △청소년 비만 환자 △대사이상지방간 환자 등 4개 대상군을 아우르는 임상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심혈관 분야에서는 2형 당뇨병·심혈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가 지난해 12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게재되며 심혈관 대사 건강상의 이점을 입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마운자로의 질주에 위고비는 먹는 제형 국내 출시와 함께 세마글루타이드와 카그릴린타이드(cagrilintide)를 결합한 복합제 카그리세마(CagriSema), 삼중 작용제 UBT251 등 파이프라인으로 대항하고 있다"며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신장·간질환·암 억제까지 포함하는 적응증 포트폴리오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