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예지 기자] '미국통'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선제적인 북미 투자 카드가 미국 정부와의 직접적인 '그리드 동맹'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효성중공업이 미국 핵심 에너지 당국자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현지 전력망 현대화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입지를 다진 것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폭증과 노후 인프라 교체 주기가 맞물려 초고압 전력 설비 숏티지(공급 부족)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독보적인 현지 공급망을 무기로 북미 전력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굳히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6일 효성하이코(Hyosung HICO)에 따르면 제이슨 닐 효성 HICO 법인장은 최근 케이티 제레자 미 에너지부(DOE) 전력국 차관보 및 실무 팀원들을 비롯해 피터 레이크(Peter Lake) 미 국가에너지우위위원회(NEDC) 전력망 담당 선임국장 등 현지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는 정·관계 핵심 관계자들과 잇따라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효성중공업과 미 에너지 당국은 △미국 전력망의 미래 △전력 설비의 미국 내 생산 역량 강화 방안 △급증하는 현지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투자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특히 이번 회동은 현재 북미 전력 시장이 겪고 있는 전례 없는 공급 병목 현상과 맞물려 미 당국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현재 미국 현지에서는 대형 전력변압기를 주문한 뒤 제품을 받기까지 평균 2년 반에서 최대 4년까지 소요되는 극심한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발전소 전력을 송전망에 연결하는 발전기 승압 변압기(GSU)의 납기 역시 160주(3년 이상)를 넘어선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자국 내 탄탄한 생산 기반을 갖춘 파트너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 같은 시장 특수 속에 조 회장이 그동안 구축해 온 정·관계 네트워크와 북미 투자 행보는 독보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 회장은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 및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빌 해거티 상원의원 등 미국 에너지·정계 최고 경영층들과 깊은 신뢰 관계를 맺으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 "AI 및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인프라는 이제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며 멤피스 공장 인수를 결단한 조 회장의 판단이 현 시장 상황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2월 미국 유력 송전망 운영사와 약 7870억원 규모의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한국 전력기기 기업 중 미국 시장 단일 프로젝트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공급 계약을 성사시킨 바 있다. 이미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765kV 초고압 변압기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하며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효성은 오는 2028년까지 총 3억 달러(약 4400억원)를 순차적으로 투입해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의 3차 증설을 진행 중이다. 증설이 마무리되면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초고압 변압기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효성중공업 중공업 부문의 지난 1분기 말 기준 전체 수주잔고는 이미 15조 1000억원에 달하며, 특히 올해 신규 수주의 절반 이상이 북미 시장에서 나오는 등 압도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효성중공업은 지난달 북미 최대 에너지 인프라 EPC 기업인 콴타(Quanta Services)의 자회사와 손잡고 초고압차단기(GCB) 합작법인 'HYOSUNG HICO BREAKER, LLC'를 설립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최초로 세계 최대 전력 시장인 미국에 변압기와 차단기 생산능력을 모두 갖춘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의 입지를 완성한 것이다.
현지 정부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등 자국 내 생산 제품을 우대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변압기와 차단기 전 영역에서 독보적인 현지 공급망을 구축한 효성중공업의 경쟁력은 향후 그리드 현대화 사업 수주에서 압도적 우위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지 생산 비중을 높임으로써 공급 병목에 기민하게 대응해 납기 리드 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관세와 물류비 부담까지 대폭 낮춰 수주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방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콜로서스'에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추진하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직거래 성과까지 가시화되고 있어, 이번 미국 에너지부와의 밀착 행보는 효성중공업의 북미 전력 시장 지배력을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