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30년 年1000억 효과"…SK이노, 6년 걸리던 '숙련자의 눈' AI로 보완

2026.09.15 14:00:01

"주말에도 전화, 엔지니어들 노이로제" 설비 이상 대응 AI로 전환
AI 24시간 분석·엔지니어 최종 판단…'듀얼 브레인' 체계 구축
'스팟' 10대 안팎 확대 검토…CCTV·드론으로 공장 사각지대 감시
"AI 센서 찍어낸다"…구성원이 직접 모델 개발·외부 라이선스도 검토

[더구루(울산)=정예린 기자] "2030년까지 연간 1000억원 정도의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창훈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제조AI팀장은 지난 10일 찾은 울산CLX에서 제조 인공지능(AI) 전환(AX)에 대해 "에너지 절감이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인력 축소보다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연속적으로 실시간 확인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효율성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울산CLX는 1964년 가동한 국내 최초 정유공장을 모태로 한 SK이노베이션의 핵심 생산기지다. 서울 여의도 약 3배인 250만평 부지에 정유·석유화학·윤활유 생산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하루 최대 84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한다. 5개 정유공장을 갖춘 국내 최대 원유 처리시설이자 단일 석유화학공장 기준 원유정제 생산능력 세계 3위 규모다. 

 

 

◇ 60년 공장·98개 공정…세대교체 속 운전 노하우 데이터화

 

이날 찾은 중질유분해공정(HOU) 조정실에서는 운전원들이 여러 대의 모니터와 폐쇄회로(CC)TV 화면을 쉴 새 없이 살피고 있었다. 온도와 제품 투입량 등 공정 운전 조건부터 설비 이상 여부까지 확인하며 4조2교대로 365일 24시간 공장을 지킨다.

 

조정실에 앉는다고 곧바로 공장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입사원이 2~3년간 교육을 거친 뒤 다시 3~4년가량 현장 경험을 쌓아야 공정 전반을 이해하는 숙련도를 갖출 수 있다. 최소 5~6년이 필요한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제조 AX에 속도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울산CLX는 1960년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 증설돼 세대가 다른 설비가 함께 돌아가는 '다세대 설비' 사업장으로 평균 설비 연령이 33.6년에 달한다. 98개 공정이 서로 연결돼 한 공정의 운전 조건이 다른 공정의 생산량과 품질, 수율, 에너지 사용량에 영향을 미친다. 베테랑 인력의 퇴직이 이어지면서 수십 년간 사람의 머릿속에 축적된 운전 노하우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 팀장은 "30년을 운전한 분과 5년을 운전한 분의 역량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며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생기는 역량 공백을 AI가 메워주는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이 내놓은 해법은 AI의 분석·예측 능력과 현장 구성원의 경험을 결합한 '듀얼 브레인(Dual Brain)'이다. '브레인 AI'가 공정과 설비 데이터를 24시간 읽어 이상 징후와 최적 운전 조건을 제시하고, 경험과 현장 맥락을 가진 '휴먼 브레인'이 최종 판단과 실행을 맡는다. 완전 무인화보다는 사람이 놓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빈틈을 AI가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공정·에너지 '최적점' 찾는 AI…7개 모델 현장 적용

 

듀얼 브레인이 울산CLX 전체에 이미 적용된 것은 아니다. 현재 머신러닝 기반으로 최적 운전점을 계산하는 모델은 7개다. 공정에 따라 AI가 계산한 최적값을 운전원 화면에 띄워 사람이 반영하거나, 첨단공정제어(APC)가 설치된 일부 공정에서는 해당 값을 제어 시스템으로 보내 자동으로 운전 조건을 맞춘다. APC가 없는 곳은 운전원이 AI의 제안을 보고 직접 조정한다.  

 

정유·석유화학 공정은 원유 종류와 투입량, 온도, 압력, 제품 가격과 수율 등 여러 변수가 수시로 바뀐다. AI 에이전트는 이 데이터를 한꺼번에 분석해 온도를 바꿨을 때 수율과 에너지 사용량이 어떻게 변하는지 계산하고 현재 조건에서 경제성이 높은 운전점을 찾는다. 사람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값을 조절하던 영역에 실시간 계산 능력을 더하는 방식이다. 

 

생산 공정과 함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는 분야는 유틸리티다. 울산CLX에서는 스팀과 전력, 수소, 연료 등 각종 에너지가 여러 공정을 오가는데 개별 공장만 최적화해서는 전체 비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SK이노베이션은 CLX 전체의 수요와 공급을 AI로 계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스팀 네트워크에는 최적화 모델을 이미 적용했다. 전력·용수 등 다른 유틸리티도 순차적으로 최적화 대상에 포함한다. 

 

AI 적용 전후의 경제성도 모델별로 추적하고 있다. 아직 생산성 개선율이나 세부 산정 기준을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사내에서는 추가 자원을 투입해 적용 범위를 넓힐 만한 수준의 효과가 확인됐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정 팀장은 "모델별로 적용 전후 실제 공장의 가동 경제성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모두 추적하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리소스를 투자할 만하다고 판단할 정도의 유의미한 효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 '스팟' 1대→10대 안팎 검토…CCTV·드론도 늘린다

 

설비 관리에서도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던 방식이 바뀌고 있다. 회전기기 모니터링 플랫폼 '스카디(SKADI)'는 펌프와 컴프레서 등 주요 설비의 진동과 온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읽어 이상 징후를 먼저 찾는다. 정비 계획 AI와 연계해 적정 정비 시점과 작업 계획까지 제안하는 체계로 고도화하고 있다.

 

정 팀장은 "설비 이상이나 공정 이상 때문에 주말에도 전화가 오고 현장에서 트러블에 계속 대응해야 해서 엔지니어들이 전화를 받는 데 노이로제가 걸렸다"며 "그런 부분을 AI가 대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250만평 공장 곳곳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은 로봇과 드론이 맡는다. 울산CLX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보행 로봇 '스팟(Spot)' 1대를 구매해 자동 순찰과 가스 감지, 현장 계기 인식 등에 시험 적용해 왔다. 최근에는 로봇이 확보한 데이터를 관리하고 현장 조치로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면서 스팟을 10대 안팎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드론은 고정형 감시장비가 닿지 않는 곳을 확인하는 기동형 감시 수단으로 활용한다. 현장 이상 발생 시 초동 출동하거나 사각지대를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공장을 순찰하는 방식이다. 설비 검사에도 투입하고 있으며 단순 장비 대수 확대보다는 축적된 현장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예지정비 정확도를 높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정 팀장은 "로봇개는 한 10대 정도로 확대해 패트롤과 현장 자동순찰에 활용하려고 한다"며 "드론도 현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초동 출동하거나 사각지대를 관측하고 주기적으로 패트롤하는 부분에 활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고정형 감시망도 촘촘해진다. 울산CLX는 영상분석 솔루션을 이미 도입했으며 AI가 분석할 현장 데이터를 더 확보하기 위해 CCTV 설치를 늘리고 있다. 제2 유동접촉분해공정(FCC)에 CCTV를 집중 설치해 효과를 확인한 뒤 내년 CLX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CCTV와 가스 측정기, 설비 센서, 작업허가·작업자 위치 정보, 스팟과 드론이 모은 데이터는 안전·보건·환경(SHE) 통합 플랫폼 '쉴드(SHEILD)'에 모인다. 영상인식 AI가 현장 상황을 분석하고 고위험 작업을 식별해 순찰과 대응 방안을 제안한다. 하루 수천 명의 유지·보수 인력이 드나들고 수십 미터 높이의 배관과 넓은 사각지대를 사람이 모두 확인하기 어려운 울산CLX의 특성을 고려한 시스템이다.

 

 

◇  98개 공정 자체가 'AI 테스트베드'…외부 사업화도 검토

 

울산CLX의 제조 AX는 지난 5~6년간 진행한 디지털전환(DX)을 토대로 한다. 최근에는 공정을 가장 잘 아는 현장 구성원이 직접 AI 모델과 에이전트를 만드는 방식도 확대하고 있다. 외부 정보기술(IT) 업체가 공정 특성을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현장 문제를 빠르게 AI 과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정 팀장은 "외부 IT 업체와 같이 하면 저희 도메인을 모르기 때문에 1년에서 1년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며 "지금은 구성원들이 소위 AI 센서를 '찍어낸다'고 표현할 정도로 역량이 많이 올라왔다"고 자신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정과 설비 종류가 다양한 울산CLX를 제조 AI 실증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울산CLX에서 검증한 모델이 다른 정유·석유화학 사업장에서도 효과를 낼 경우 외부 사업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SK AX와 함께 기존 플랫폼에 AI 모델을 얹어 라이선스하는 형태와 소형언어모델(SLM), AI 에이전트, 컨설팅 등이 장기 선택지로 거론된다.

 

정 팀장은 "저희 쪽에서 실증하고 테스트가 되면 어떤 석유화학 회사도 쓸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다"며 "AI 모델을 기존에 가지고 있던 플랫폼 위에 얹어 이 플랫폼을 라이선스화해서 사업화하는 모델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울산CLX는 올해 예측 모델과 연계 에이전트 개발·검증을 시작으로 2027년 데이터 인프라를 확충하고 2028년까지 브레인 AI 신뢰성을 높일 계획이다. 듀얼 브레인을 특정 시점에 모든 공정을 한꺼번에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별 실증 결과와 필요에 따라 적용 범위를 넓혀 설비 가동정지 '제로(Zero)'와 중대재해 '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같은날 울산CLX를 찾아 SK이노베이션의 제조 AX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최 회장은 "SK이노베이션 울산CLX는 SK그룹의 근간인 SK이노베이션의 심장으로, 지금까지처럼 헌신을 다해 SK그룹의 AX 혁신까지 이끌어 달라"고 격려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6 울산포럼’과 연계해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WAVE 2026(울산세계미래산업박람회)'에 울산CLX의 제조 AX 기술을 전시했다. 듀얼 브레인을 비롯해 생산최적화 AI, 설비이상 예측 AI, 쉴드와 현업 구성원이 직접 만든 AI 에이전트 등을 소개했다. 

 

정예린 기자 yljung@thegur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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