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예린 기자] LG가 산업 특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프로젝트별 수백억원대 비용 절감 효과를 확인하고 기업간거래(B2B) 시장 공략에 나선다. 그룹 내부에서 축적한 실증 성과를 외부 기업용 상품으로 전환하고 경쟁사에도 공급 문을 열어 독자 AI 기술의 수익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화영 LG AI연구원 AI사업개발부문장은 14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AI 토크 콘서트 2026'에서 엑사원 태뷸러(EXAONE Tabular) 등 산업 AI의 외부 공급 가능성에 대해 "삼성이 원하면 충분히 제공할 용의가 있다"며 "경쟁 관계를 떠나 LG가 만드는 기술을 다른 국내 기업이 활용하고, 여기서 쌓인 도메인 지식으로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엑사원 태뷸러는 LG이노텍이 첫 사례를 만들었지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해외 제약사와 병원, 에너지 기업 등에서도 수요가 많다"며 "보안이 중요한 기업은 내부에 설치하고 해외 고객은 클라우드에서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두 가지 방식으로 외부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온프레미스 구축은 LG CNS 등 파트너사와 협업하고 해외 API 서비스는 클라우드 사업자와 연계한다.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생체신호를 활용한 환자 상태 예측, 제약사는 대량의 생산 데이터를 활용한 제조 공정 예측 등에 엑사원 태뷸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외부 사업화의 기반은 지난 5년간 LG 계열사와 쌓은 실증 성과다. LG AI연구원은 화학 플랜트 운영과 품질 검사, 제품 수요·원재료 가격 예측 등에 AI를 적용해왔다. 2020년 12월 설립 이후 배터리 수명·용량 예측과 생산·자재 관리 최적화, 신약 후보 물질 발굴 등 100건이 넘는 산업 난제를 해결했다.
이 부문장은 "각 프로젝트에서 수백억원 단위의 비용 절감 효과를 냈다"며 "여기서 만들어진 기술을 다른 도메인으로 옮겨 직접 상품화하거나 LG CNS·LG유플러스와 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이 같은 기술 전환이 이미 매출로 이어졌다. 제품 수요와 원재료 가격 예측에 쓰던 시계열 AI를 금융 특화 솔루션 '엑사원 비즈니스 인텔리전스(EXAONE Business Intelligence·BI)'로 확장해 미국과 한국 상장기업의 향후 주가 흐름을 분석한다. 분석 결과는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을 통해 글로벌 고객에게 판매하고, 국내에서는 코스콤과 협업하고 있다.
제조 분야 대표 적용 사례는 LG이노텍이다. 신제품과 모듈, 공정 변화가 잦아 충분한 생산 데이터가 쌓이기 어려운 양산 초기부터 엑사원 태뷸러를 활용해 예측 모델을 적용했다. 지난달 말 공개한 최신 모델은 글로벌 정형 데이터 벤치마크에서 이진 분류와 회귀 성능 평가 부문 1위를 기록했으며 별도 재학습 없이 소량의 데이터만으로 새로운 조건에 대응할 수 있다.
유정선 LG이노텍 AX담당은 "기존 방식은 모델 재학습에 최소 14일, 약 300시간 이상의 생산 공정 데이터가 필요했지만 엑사원 태뷸러는 최대 50시간 내 변화된 조건을 반영해 추론할 수 있었다"며 "모델 대응 리드타임을 약 85% 줄였다"고 밝혔다.
LG AI연구원이 산업별 '전문가 AI'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용 모델의 벤치마크 경쟁보다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변수와 예외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우선한다.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은 "산업 현장에서는 단순히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수많은 변수와 단 1%의 특이사항까지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AI가 필요하다"며 "AI를 도입하는 것보다 실제 업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며 생산성과 품질을 개선해 기업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용 AI 확산에서는 보안과 인프라 비용도 관건이다. 엑사원 태뷸러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용량을 줄이고 경량화해 기업 내부에 온프레미스로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낮은 사양에서도 수초 내 응답이 가능하다.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은 "AI를 평가할 때 벤치마크 성적뿐 아니라 비용과 커스터마이징, 외부 제공자에 의존하지 않고 통제해 쓸 수 있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한다"며 "가장 빠르고 똑똑한 범용 모델보다 충분히 똑똑한 AI를 비용 효율적으로 만들고 원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엑사원 데이터 파운드리(EXAONE Data Foundry)'는 기업별 전문 AI 구축을 뒷받침한다. 기업 내부 문서와 데이터를 활용해 전문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특정 업무에 특화된 모델을 개발하는 기술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심사 AI를 비롯해 정부·금융기관 등에 적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