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철강금속과에 있던 시절 연구·개발(R&D) 예산을 5년 동안 총 50억원을 따내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인공지능(AI) 온디바이스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1조원인데 실무자들의 분위기는 다르다.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선진국들의 지원 금액에 비하면 (1조원은) 세발의 피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은 19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제13회 소부장 미래포럼'에 연사로 나와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미국, 대만 등이 지원하는 규모에 비해 우리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부연했다.
또한 1986년 공업발전법으로 통합되기 전 존재했던 7개 특정 산업에 대한 육성 법안과 현재 발의된 반도체특별법을 비롯한 각종 개별 산업 지원법에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문 차관은 "자동차가 자율주행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이 비슷하다"며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그 내용을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만과 중국도 화두에 올랐다. 문 차관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두 차례의 반도체 치킨게임으로 대만 산업이 무너졌으나 TSMC가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생산을 시작하면서 부활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을 앞지를 전망이다. 문 차관은 "독일과 일본을 벤치마킹했던 한국의 산업 정책이 유효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에 대해서는 "20년 동안 중국 덕분에 먹고 살았고, 이젠 중국 때문에 죽겠기에 앞으로 이를 잘 극복해야 하는데 그 해결 방안도 역시 중국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고 분석했다.
문 차관은 2010년대 초반 삼성의 시안 공장 건설을 승인했던 때를 회고했다. 그는 "아무리 곁눈질로 익힌다고 하더라도 10~20년 이내에 중국이 D램을 시작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중국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나"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참석한 소부장 기업 경영진도 중국의 급부상에 공감했다. 김진동 레이크머티리얼즈 대표이사는 "자동화 설비나 부품은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경쟁력이 높아 지금 (중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며 "최근 몇 개 기업도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데 중국이 거의 반값으로 제안해 중국 쪽으로 주문이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를 비롯해 첨단산업에 투자할 때 그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ICT)나 자동화 설비에도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도 "중국을 제대로 공부하고 벤치마킹해야 좋은 정책과 훌륭한 사업 전략이 나올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편, 이날 산업부는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부에 구축 중인 반도체 테스트베드인 '미니팹'이 2027년 5월 가동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을 공유했다. 미니팹은 SK하이닉스가 51% 지분을 보유하며, 12인치 웨이퍼 기반의 최신 공정·계측 장비 약 40대를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