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街 세대교체] 창업주 DNA 잇는다…2·3세 전면배치

형제경영·부자경영·전문경영인 투톱 체제 등 '눈길'
부광약품·파마리서치 세대교체 진통…후계구도 안갯속
보령·녹십자·일동제약 등 오너 3세 경영 공식화

‘2400조원’. 글로벌 제약 시장 규모다. 메가 마켓의 최전선에는 이제 'K-제약'의 깃발을 든 토종 제약사들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과거 내수 시장과 영업력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혁신의 파고를 넘고 있는 것이다. 무대가 세계로 확장되는 격동의 시기, 국내 제약업계는 '안주' 대신 '인적 쇄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창업주 세대가 일궈놓은 ‘신약 개발’의 집념을 이어 받으면서도, 글로벌 감각과 전문 경영 지식으로 무장한 2·3세 경영인들이 전면에 배치되며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더구루에서는 [제약街 세대교체]라는 기획을 통해 오너경영부터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문경영인,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전격 영입된 해외파 R&D 리더들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구루=김현수 기자] 제약·바이오 2·3세들이 경영 전면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창업주에 이은 세대교체를 통해 리더십 및 기업문화 변화를 꾀하는 한편,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발맞춰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등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젊은 피가 수혈된 만큼 기존 보수적인 사업 방향성을 탈피한 새로운 전략 방향에 눈길이 쏠린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약은 2세 권기범 회장이 마데카솔·인사돌 등 고 권동일 창업주가 일궈놓은 간판 제품을 이어받았다. 내수 중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를 통해 헬스케어 사업 다각화를 이뤄냈다. 권 회장은 전문경영인과의 '투톱 체제'로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업계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호흡을 맞추는 대표사례로 꼽힌다. 권 회장의 아들 권병훈 이사대우도 지난 2023년 주식을 처음 취득한 뒤 이듬해 입사, 지난달 임원에 오르며 3세 경영을 향한 승계 절차를 조용히 밟고 있다.

 

대원제약 경영 특징은 형제 경영이다.  고 백부현 창업주 장남 백승호 회장이 전사 경영을, 차남 백승열 부회장이 연구개발(R&D)를 맡는 구조다. 이는 각자 잘하는 분야를 인정해 주었던 창업주의 '전문성 중시' 유전자를 계승한 결과다. 두 형제의 각자 영역이 조화를 이룬 영향일까. 백 회장 형제 경영은 대원제약 창립 이래 2020년까지 60여 년간 무적자 신화를 이뤄냈다. 탄탄히 이어온 형제 경영에 최근 다시 한번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백승호 회장의 장남 백인환 대표가 2024년 대표이사로 승진하며 3세 경영을 위해 전면에 나섰고, 백승열 부회장의 아들 백인영 대표는 자회사 에스디생명공학을 맡아 기존 ‘형제 경영’이 '사촌 경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한독은 2세 김영진 회장이 경영에 전면에 나서면서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다. 2012년 프랑스 사노피와의 48년 합작을 청산하며 독자 생존의 길을 걷고 있다. 고 김신권 창업주의 '글로벌 지향' 유전자는 계승했으나,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김 회장은 합작에 의존하는 대신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전략 카드를 꺼냈다. 이를 통해 2020년 매출 5000억원을 돌파했고 2022년 서울 마곡에 전용 R&D 연구소를 세우며 신약 개발 체제를 갖췄다. 3세 경영 승계 작업도 본격화 단계다. 3세 김동한 전무는 지난 2024년 전무로 승진하며 사실상 차기 회장 자리를 굳혔고, 부자가 나란히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휴온스 2세 윤성태 회장은 1997년 부친인 고 윤명용 창업주가 별세하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의 경영에는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애국’이라는 부친의 경영 DNA가 녹아있다. 윤 회장은 창업주의 유산인 국산 리도카인 주사제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북미 수출 선봉 제품으로 진화시켰다. 국내 최초 플라스틱 주사제를 개발해 회사 성장의 기반을 닦았고, 자회사 휴메딕스를 통해서는 전 세계 공급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던 필수의약품 헤파린나트륨의 첫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지난해 회사 매출은 8475억원을 달성하며 1조 클럽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윤 회장은 지난해 보유 주식 일부를 세 아들에게 증여하며 3세 승계가 가시화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30년에 걸쳐 키워온 신약 사업의 산실이다. 지난 2020년 상장과 함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의 미국 흥행으로 지난해 영업이익 2039억 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부친 최종현 회장 시절부터 이어진 '기술 기반 성장'이라는 SK 고유의 DNA가 신약 개발로 발현된 셈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오너 3세 최윤정 전략본부장은 지난 2017년 SK바이오팜에 합류해 지난 1월 전사 전략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방사성의약품(RPT) 시장 선점을 목표로 SK바이오팜의 다음 챕터를 쓰고 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창업주 강덕영 회장과 아들 강원호 대표의 공동 경영 체제다. 매출의 13% R&D 투자 원칙, 100% 자체 연구개발 고집, 등 창업주가 직접 세운 철학은 지금도 회사를 관통하는 DNA다. 2세인 장남 강원호 대표는 강덕영 회장과 지난 2014년부터 12년째 공동대표를 유지하며 실질적인 경영 승계를 진행 중이다.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개발 등 바이오 신사업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자신만의 경영색을 찾아가고 있다.

 

세대교체의 바람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곳도 있다. 부광약품은 고 김성률 회장 타계 이후 상속세 이슈와 오너 일가 간 지분 갈등이 겹치며 지난 2022년 최대주주 지위가 OCI홀딩스로 넘어갔다. 파마리서치는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던 장녀 정유진 이사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재선임 없이 이사회를 떠나면서 승계 구도가 장남 정래승 이사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됐다.

 

3세 경영을 공식화한 제약사도 있다. 보령은 창업주 김승호 명예회장의 손자인 김정균 대표가 올해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하며 오너 3세 경영을 완성했다. 녹십자는 창업주 허채경 회장의 손자인 허은철·허용준 형제가 각각 GC녹십자와 녹십자홀딩스를 이끄는 형제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오너 3세 윤웅섭 대표가 그룹 지배구조 개선부터 신약 개발 중심의 사업 전환까지 전방위적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며 세대교체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2, 3세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서면서 세대 교체가 빨라지고 있다"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등을 잣대로 경영 능력을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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