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진유진 기자] K-제약바이오의 심장부인 연구소에 '글로벌 DNA'가 빠르게 이식되고 있다. 단순히 학위만 화려한 인재를 넘어 글로벌 빅파마 현장에서 신약 임상과 상업화를 직접 성공시킨 베테랑들이 R&D 전면에 배치되며 기업 체질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확 바꾸는 모습이다. 각 사의 인적 쇄신은 기술 수출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직접 깃발을 꽂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 일동제약, 박재홍 사장 영입…자회사 합병으로 R&D 전열 재정비
일동제약은 지난달 1일 박재홍 박사를 R&D 본부장(사장)으로 전격 영입하며 인적 쇄신의 신호탄을 쐈다. 박 사장은 연세대 생명공학 학·석사를 거쳐 미국 보스턴대 의대 박사, 하버드대 의대 연구원을 지낸 정통파다. 특히 얀센, 다케다,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빅파마에서 18년 넘게 항암제 임상과 상업화를 이끈 실전형 전문가로 통한다. 직전 근무지인 동아ST에서도 최고과학책임자(CSO)로서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업 앱티스 인수를 주도하며 '해결사' 면모를 입증한 바 있다.
그의 취임은 일동제약 R&D 전략을 '분산'에서 '집중'으로 돌려놓았다. 일동제약은 박 사장 선임과 동시에 비만 신약 R&D 자회사 유노비아의 흡수합병을 결정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유지해온 파이프라인 분할 개발 기조를 깨고 역량을 본체로 결집한 것이다.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 등 대외 환경 악화에 맞서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박 사장의 지휘 아래 비만 신약 'ID110521156' 등 핵심 파이프라인 글로벌 상업화에 화력을 쏟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업계는 박 사장 영입과 자회사 합병이 맞물린 것이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통합 R&D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한다. 박 사장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합병을 통한 자산 내재화를 결합함으로써 신약 개발의 리드 타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겠다는 복안이다.
◇ 유한양행, '30년 만 귀국' 조학렬 전무 필두로 TPD 시장 선점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폐암 2차 치료제 '렉라자' 성공 신화를 이을 차세대 병기로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를 낙점했다. 이를 위해 미국 TPD 선구 기업 카이메라 테라퓨틱스에서 플랫폼 생물학을 지휘했던 조학렬 전무를 뉴 모달리티 부문장으로 영입했다. 조 전무는 경북대 유전공학 학·석사 후 미국 밴더빌트대 의대 박사를 취득하고 하버드·MIT·예일대에서 연구원과 연구교수로 활동한 세계적 권위자다.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조 전무의 합류는 유한양행 R&D 체질에 '속도'와 '유연성'을 더했다. 그는 전통 제약사의 경직성을 깨고 조직을 바이오텍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도록 세팅했다. 질병 유발 단백질을 직접 분해해 제거하는 TPD 기술을 핵심 DNA로 심어, 기존 약물로는 공략할 수 없었던 영역에서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유한양행은 조 전무의 지휘 아래 국내 바이오텍들과 활발한 협력을 논의하며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확장 중이다. 글로벌 현장 리더의 실전 감각과 유한양행의 자본력을 결합해 향후 '계열 내 최고(Best-in-class)'를 넘어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신약으로 100년 기업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목표다.
◇ 리가켐바이오, '머크 베테랑' 한진환 전무 내세워 항암 영토 확장
2년 전 오리온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이한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리가켐바이오)는 글로벌 인재 영입을 통해 '종합 항암 신약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그 중심에는 지난 3월 합류한 한진환 신약연구소장(전무)이 있다. 한 전무는 미국 터프츠대 면역학 박사 후 록펠러·에모리대를 거쳐 글로벌 빅파마 머크(MSD)에서 11년간 ADC와 펩타이드약물접합체(PDC) 등 차세대 항암제 개발을 주도한 베테랑이다.
리가켐바이오는 한 전무 합류를 기점으로 '기술 수출 전문'에서 '글로벌 상업화'로 정체성을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암연구학회 연례학술대회(AACR 2026)에서 기존 ADC의 고질적 문제인 안구 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B세포 성숙 항원(BCMA) 타깃 ADC 파이프라인을 공개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증명했다. 리가켐바이오는 주력인 ADC 플랫폼의 강점은 유지하되, 한 전무가 이끄는 신약연구소를 통해 이중항체와 스몰 포맷 등 차세대 모달리티로 영토를 확장하는 이원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재계는 오너 3세 담서원 부사장을 필두로 한 오리온의 강력한 자본력과 한 전무의 글로벌 R&D 네트워크가 만난 점에 주목한다. 리가켐바이오가 기술 수출 전문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종합 항암 신약 개발사로 도약할 수 있을지가 이번 인사의 성패를 가를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인적 쇄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K-바이오가 '후보물질' 발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규제 기관의 문턱을 넘고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상업화의 문법'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의 시스템을 몸소 겪은 리더들은 임상 설계 단계부터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며 "이들의 실전 감각이 국내 기업의 자본력과 결합한다면 K-제약바이오의 글로벌 스탠다드 진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