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街 세대교체] '샐러리맨 신화'서 성공 방정식 찾는다

빅파마서 파격 발탁·샐러리맨 출신·오너 공존형…3인 3색 전문경영인
글로벌 CDMO 1위·국산 항암제 美 허가·CKD-510 기술이전 등 성과

[더구루=김현수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전문경영인(CEO)들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오너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검증된 실무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CEO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사상 최대 실적과 기술수출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국내 대형 제약사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빅파마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로슈(Roche), 제넨텍(Genentech) 등 글로벌 빅파마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초격차'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성과는 단박에 숫자로 드러났다. 존림 대표 취임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누적 수주 총액은 17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22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 매출 3조원 돌파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K-바이오 업계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 클럽'을 달성했다.

 

지난 3월 말에는 미국 록빌 소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공장 인수를 마무리하며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1위 규모로 도약했다. 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항체약물접합체) 등 신규 모달리티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는 '초격차 2.0'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1987년 입사한 뒤 40여 년을 회사와 함께한 '유한맨'으로 통한다. 2021년 그가 취임 후 선택한 전략은 기존의 실험실 안주가 아닌,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앞세운 글로벌 신약 승부였다. 렉라자는 글로벌 제약사 얀센(Janssen)과의 기술이전 파트너십을 발판 삼아 항체 치료제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의 병용요법으로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냈다. 국산 신약 항암제 최초의 미국 허가로, 창사 100주년을 앞두고 조욱제 체제가 완성한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된다.

 

경영 성적표도 좋다. 지난해 유한양행 매출은 2조186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1% 급증한 1043억원. 특히 렉라자와 얀센의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글로벌 분기 매출은 올해 1분기 기준 2억5700만 달러(약 3782억원)로 출시 2년 만에 5배 이상 불었다.

 

조 대표는 신약 개발 전담 법인 '뉴코(NewCo)' 설립 토대로 낮은 영업이익률 극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와 대사이상 지방간염 치료제 ‘YH25724’ 등 핵심 파이프라인을 외부 투자 유치 구조로 분리해 비용 부담은 낮추고 개발 속도는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 사장은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CEO다. 2015년 외부에서 영입돼 올해로 1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무려 4연임이다. 경력도 이례적이다. 한독(Handok)을 시작으로 중외제약, 스미스클라인비참(SmithKlineBeecham), 릴리(Eli Lilly), 노바티스(Novartis), 머크세로노(Merck Serono)까지 국내부터 해외까지 다국적 제약사를 두루 거친 '글로벌 영업통'이다.

 

김 대표의 경영 스타일은 오너 이장한 회장과의 철저한 '분업'이다. 회장이 그룹의 장기 비전과 R&D 전략 방향을 제시하면, 김 대표가 실무 경영과 사업 추진을 총괄하는 구조다. 국내 제약업계의 '오너·전문경영인 공존형' 가운데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례라는 평가다.

 

김 대표의 핵심 전략은 '기술수출'이었다. 대표 성과로는 2023년 노바티스(Novartis)에 희귀 신경근육질환·심장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CKD-510 기술이전이 꼽힌다. 해당 계약 규모는 총 13억500만 달러(약 1조7000억원)로 종근당 역대 최대였다. 이를 발판으로 당해 종근당은 연결기준 매출 1조6694억원. 영업이익 2466억원을 달성해 창사 이래 최대 기록을 썼다.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과 박성수·이창재 대웅제약 공동 대표도 업계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안 사장은 엔데믹 이후 실적 부진을 겪던 중 2024년 독일 CDMO 기업 IDT바이오로지카(IDT Biologika) 인수로 판을 바꿨다. 불과 1년 만에 IDT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2025년 연결 매출은 전년 대비 144% 급증한 6514억원을 기록했다. 대웅제약은 박 대표가 글로벌 사업과 R&D, 이 대표가 국내 영업·마케팅을 각각 맡는 투트랙 경영 체제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별도 영업이익 2000억원을 돌파했다. 보툴리눔 톡신 제품 나보타의 미국 시장 점유율 2위, 위식도역류 치료제 펙수클루(Fexuclue)의 국내외 합산 매출 1000억원 달성 등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약업계가 복제약 위주의 내수 영업에 치중했다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이후에는 글로벌 기준에 맞는 R&D와 M&A가 활발해졌다"며 "이러한 세대교체가 K-제약바이오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재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R&D와 영업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세대교체를 완료한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를 줄이는 골든타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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