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예지 기자]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정상급 모터스포츠 무대인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최고 등급 공식팀 운영을 일시 중단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앞서 2014년 '현대차가 감히 모터스포츠에 도전한다'는 우려와 비아냥을 딛고 진출 5년 만인 지난 2019년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일궈낸 현대차가, 새로운 기술 규정 도입을 앞두고 전열을 재정비해 오는 2029년 복귀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1일 스페인 AS에 따르면 현대차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WRC 규정에 맞춰 2027년과 2028년 시즌 동안 제조사 공식팀 활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경쟁사인 토요타가 이미 차세대 규정 차량 테스트에 나선 것과 달리 현대차는 신규 랠리1(Rally1) 차량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식팀 중단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대차가 자리를 비우면서 2027년 WRC 제조사 경쟁에서는 토요타가 완성차 제조사(OEM) 중 사실상 유일하게 신형 WRC 규정에 맞춘 차량 개발에 나선 팀으로 남을 전망이다. 새로운 규정에 맞춘 차량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현대차가 공식팀을 운영하지 않으면서 제조사 챔피언십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가 랠리 무대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말 i20 랠리2(Rally)2의 3차 진화형 모델이 호몰로게이션(인증)을 거칠 예정이며, 이를 바탕으로 2027년 랠리2 프로그램으로 활동 반경을 우회·조정할 전망이다. 티에리 누빌과 아드리앙 푸르모 등 현대 월드랠리팀 소속의 주력 드라이버들이 개량된 랠리2 차량을 타고 주요 대회에 출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랠리2 프로그램으로의 우회는 공식 랠리1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기간에도 랠리 현장 경험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 경기에서 차량 성능을 검증하고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는 한편 정비 인프라와 드라이버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규정 도입 초기 톱 클래스 차량의 완성도나 안정성을 지켜보는 동안, 고도화된 랠리2 차량으로 실속 있는 데이터와 경쟁력을 충분히 챙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결정은 모터스포츠 사업의 후퇴가 아닌, 10년 넘게 쌓아온 자산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재조정에 가깝다. 현대차는 WRC 진출 이후 랠리카 개발과 레이스를 통해 고성능차 기술력을 쌓아왔으며, 모터스포츠를 차량 성능을 극한 환경에서 검증하는 '달리는 실험실'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경험은 고성능 브랜드 N 육성 및 양산차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의 모터스포츠 포트폴리오는 WRC에만 머물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는 내구레이스로 무대를 넓혀 2026년 세계 내구선수권대회(WEC) 하이퍼카 클래스에 출전했으며, 르망 24시 첫 출전에서 완주에 성공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WRC에서는 랠리와 고성능 기술을, WEC에서는 장시간 주행에 필요한 △내구성 △열관리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을 검증하는 다각화된 전략이다.
오는 2029년은 현대차가 WRC에 다시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시점으로 꼽힌다. 새로운 현대 i20 출시가 예상되는 데다 파워트레인 규정이 보다 유연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새로운 차량과 기술 전략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의 WRC 공식팀 잠정 중단은 모터스포츠에서의 후퇴가 아니라 오는 2029년을 겨냥한 포석이다. 공식팀 활동은 잠시 멈추지만 랠리2 프로그램과 제네시스의 WEC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그룹 차원의 모터스포츠 역량을 바탕으로, 차세대 경쟁력을 축적하며 WRC 정상 재도전을 위한 발판을 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