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홍성일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과 중국산 저가 공세로 실적 부진을 겪던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에 새로운 반등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 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현지 생산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배터리 3사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일 미국태양광산업협회(SEIA)와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가 발표한 '2026년 3분기 미국 에너지저장장치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내 ESS 신규 설치 용량은 20.2GWh(기가와트시)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반기 누적 설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30.8GWh에 달하며, 연간 설치 규모는 71G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부문별로는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대규모 유틸리티급(전력망용) 프로젝트가 18GWh를 기록하며 전체 성장의 대부분을 견인했다. 상업·산업용(C&I)은 1.8GWh, 주택용은 657MWh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2분기 신규 설치 용량의 약 74%가 애리조나, 텍사스, 유타 등 3개 주에 집중됐다. 애리조나주는 단일 주 기준으로 역대 분기 최대 실적인 6.2GWh의 신규 저장 설비를 구축하며 전체 1위에 올랐다.
미국 내 ESS 수요가 폭발한 배경에는 태양광 발전 설비의 빠른 증설과 AI 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이 맞물려 있다. 태양광 발전은 일조량이 풍부한 낮에는 대량의 전력을 생산하지만 야간에는 발전량이 전무하다. 이 같은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망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피크 시간대에 방출하는 ESS가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ESS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주목받는 핵심 제품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NCA·NCM)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30% 이상 저렴하고 화재 안전성이 뛰어나다. 이에 따라 전기차 대비 공간이나 무게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ESS 분야에서는 LFP 배터리가 대세로 안착하고 있다.
시장 변화에 발맞춰 국내 배터리 3사도 미국 현지 ESS·LFP 생산 체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말까지 북미 지역에서 5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해 현지 최대 공급사로 입지를 굳히고, 오는 2030년까지 이를 100GWh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JV)인 스타플러스에너지를 통해 올 4분기부터 ESS용 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다. 스타플러스에너지는 지난해 4분기부터 ESS용 NCA 배터리를 생산해 왔다.
SK온 역시 조지아 공장을 거점으로 미국 네오볼타 파워(NeoVolta Power)와 5년간 총 9GWh 규모 LFP 파우치 셀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를 가시화하고 있다.
업계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강화 기조가 K-배터리 3사의 실적 개선을 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중국산 비(非)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무역법 301조 관세를 기존 7.5%에서 25%로 대폭 인상했다. 각종 부과금을 합산하며 실질 관세율은 40%를 넘어선다.
또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을 통해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요건 내 금지외국기관(PFE) 부품·소재 배제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에 따라 한때 미국 시장 점유율 80%를 장악했던 중국산 LFP 배터리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북미 현지 생산 거점을 갖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반사이익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SEIA 관계자는 "이번 기록적인 성장세는 ESS가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전기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강력한 핵심 수단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