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좋아하지만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면 슬쩍 멀어졌던 30대 새댁이 차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마력과 토크보다 “그래서 실제로 타보면 어떤데?”가 더 궁금한 평범한 운전자의 시선으로 차를 바라봅니다. 어려운 자동차 용어도, 낯선 기능도 직접 부딪쳐가며 하나씩 알아갑니다. 전문가의 평가보다는 일상에서 느낀 솔직한 인상과 궁금증을 담아보려 합니다. 독자들과 함께 차근車근 알아가겠습니다. -편집자주-
[더구루=나신혜 기자] 볼보자동차의 차세대 순수 전기 플래그십 세단 ES90을 직접 경험해 봤다. 서울 마곡에서 출발해 경기도 포천까지 약 60km 구간 정도의 짧은 시승이었지만 도심과 고속도로를 오가며 ES90의 주행 성능과 승차감, 공간 활용성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했다.
ES90의 첫 인상은 다소 밋밋했다. 과한 디자인이 아니다 보니 강렬하게 다가오는 뭔가는 없었다. 오히려 외관만 놓고 보면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면부에는 전기차답게 전통적인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라졌는데, 이 때문에 어딘가 허전한 느낌도 있었다.
ES90은 볼보자동차가 지난해 3월 글로벌 시장에 처음 공개한 차세대 순수 전기 플래그십 세단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6월 사전계약을 시작해 지난 7월 공식 출시됐다. 기존 세단의 형태를 그대로 전기차로 옮긴 모델이라기보다 세단의 우아함과 패스트백의 실용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넓은 실내 공간과 높은 지상고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 문 열자 달라진 첫인상…'스칸디나비안 감성' 품은 실내
하지만 ES90의 매력은 외관보다 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선 뒤부터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볼보가 강조해 온 '스칸디나비안 감성'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깔끔' 그 자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이었다. ES90에는 자연광에 가까운 빛을 구현하는 태양광 스펙트럼 LED 실내 조명이 적용됐다. 단순히 실내를 화려하게 꾸미는 방식이 아니다. 은은하게 퍼지는 빛과 우드 소재가 어우러지며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든다. 대시보드와 도어 등에 적절하게 배치된 우드 데코 역시 과하게 꾸미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움을 살리는 요소다.
특히 앰비언트 조명은 ES90의 스칸디나비안 감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센터 디스플레이를 통해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아키펠라고(Archipelago) △포레스트 배스(Forest Bath) △미드서머(Midsummer) △윈터 블리스(Winter Bliss) △문라이트(Moonlight) 등 북유럽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6가지 테마를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빨강이나 파랑처럼 색상을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각의 테마에 분위기를 부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 여러 테마를 바꿔보면 같은 실내인데도 분위기가 제법 달라진다. 화려함을 전면에 내세운 일부 차량의 앰비언트 라이트와 달리 색이 과하게 튀지 않는다. 오히려 우드와 조명을 함께 사용해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이 강했다.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 잡은 14.5인치 세로형 센터 디스플레이도 눈에 띈다. 최근 대형 디스플레이 자체는 흔하지만 대부분 가로로 길게 배치하는 것과 달리 ES90은 세로형 화면을 택했다. 디스플레이 방향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실내에 상당한 개성이 생겼다. 지도와 각종 차량 설정, 미디어 등을 한 화면에서 조작할 수 있다.
◇ '훅' 치고 나가는 전기차와 달랐다…부드러운 주행에 넉넉한 공간
주행을 시작하면서 ES90이 왜 단순히 '전기 세단' 이상의 차를 표방하는지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ES90은 볼보의 최신 전기차 아키텍처 SPA2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브랜드 최초로 800볼트(V) 전기 시스템을 적용했다. 국내에는 92킬로와트시(㎾h) 배터리와 후륜구동을 조합한 '싱글 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106㎾h 배터리를 사용하는 사륜구동 '트윈 모터', '트윈 모터 퍼포먼스' 등 3가지 파워트레인이 판매된다. 최대 350㎾급 급속 충전을 지원해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약 22분 만에 충전할 수 있고,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유럽 WLTP 기준 최대 706킬로미터(㎞)다. 판매 가격은 7294만원부터 9541만원까지다.
차량을 주행 가능 상태로 만들자 가장 먼저 전기차 특유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는 의외였다. 전기차에서 흔히 경험하는,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차가 '훅' 하고 튀어나가는 듯한 반응이 크지 않았다.
속도는 충분히 빠르게 올라가지만 과정이 상당히 부드럽다. 강한 초기 가속으로 운전자를 긴장시키기보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속도를 높여주는 느낌에 가깝다. 전기차의 즉각적인 토크가 부담스러웠던 운전자라면 오히려 이런 설정이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연기관차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도 진입장벽이 낮았다. 필자 역시 평소 내연기관차를 주로 운전하는데 ES90에서는 전기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식할 정도의 이질감이 크지 않았다.
스티어링 휠도 상당히 부드럽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조향할 수 있었고, 속도가 붙는 과정 역시 매끄러웠다.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예상보다 운전 부담이 적었다.
오히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브레이크였다. 제법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를 빠르게 붙잡아줬다. 단순히 제동력이 강하다는 느낌보다는 운전자가 원하는 지점에서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여준다는 인상이 강했다. '안전의 대명사'라는 볼보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서스펜션은 예상보다 조금 단단한 편이었다. 노면의 충격을 모두 걸러내며 푹신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대신 차체의 움직임을 단단하게 잡아주면서 고속에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ES90에는 원페달 드라이브 기능도 마련됐다. 가속페달을 이용해 가속과 감속을 함께 조절하는 기능으로, 운전자 취향에 따라 사용할 수도 있고 끌 수도 있다. 평소 내연기관 차량에 익숙한 만큼 원페달 드라이브를 끄고 주행하는 쪽이 더 편했다. 이 상태에서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차가 자연스럽게 굴러가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를 운전할 때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회생제동 특유의 이질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로 원페달 드라이브를 활성화한 상태에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완전히 떼면 차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제법 적극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원페달 주행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는 편리할 수 있지만 내연기관차의 타력주행에 익숙하다면 어느 정도 적응이 필요해 보였다.
ES90의 또 다른 강점은 공간이다. 특히 뒷좌석이 상당히 넉넉하다. ES90의 휠베이스는 3100㎜에 달한다. 직접 앉아보면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에 여유가 있어 일반적인 패밀리 세단을 넘어 고급 의전 차량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성인이 편하게 앉기 충분하고 카시트를 설치하더라도 앞뒤 공간 때문에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인상도 일반적인 세단과 조금 다르다. 차고가 높아 시야가 답답하지 않고 SUV를 운전하는 듯한 느낌도 어느 정도 있다. 실제 주행감은 세단에 가까운데 공간과 시야에서는 SUV의 장점을 일부 가져온 셈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단의 주행감에 SUV의 공간을 합친 차'에 가까웠다.
◇ 캐리어 5개도 거뜬…패밀리카로도 손색없는 공간
트렁크의 실용성도 직접 확인해봤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6인치 캐리어 1개와 24인치 캐리어 2개, 20인치 캐리어 1개, 플랩형 20인치 캐리어 1개에 토트백과 보스턴백까지 모두 들어갔다. 단순히 제원표상 적재용량이 크다는 것을 넘어 가족 단위 장거리 여행에서도 짐 때문에 큰 불편을 겪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물론 4인 가족이 본격적인 캠핑 장비까지 챙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텐트와 테이블, 의자 등 부피가 큰 짐까지 모두 트렁크에 넣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반면 2인 캠핑이라면 뒷좌석까지 활용할 경우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결국 ES90은 캠핑이나 대형 아웃도어 장비를 자주 싣는 가족보다는 일상과 출퇴근, 가족 여행을 중심으로 차를 이용하는 4인 가족에게 더 잘 어울리는 차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다루기 어렵지 않다는 점이 좋았다. 넓은 실내를 갖췄음에도 운전하면서 차체가 지나치게 크다는 부담은 크지 않았다. 골목에 들어가거나 주차할 때도 '큰 차를 몰고 있다'는 스트레스가 예상보다 적었다.
ES90은 자극적인 차는 아니다. 외관도, 가속감도 처음부터 운전자를 강하게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문을 열고 실내에 앉아보고, 직접 운전하고, 뒷좌석과 트렁크를 사용해볼수록 장점이 하나씩 드러난다.
화려한 첫인상보다는 스칸디나비안 감성을 살린 실내와 부드러운 주행, 넉넉한 공간 그리고 안정적인 제동 성능을 앞세운 차다. 전기차의 폭발적인 가속보다 편안하고 익숙한 운전을 원하면서 세단과 SUV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ES90의 이런 성격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