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윤진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내걸고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IRA 혜택 수혜를 톡톡히 누리며 전기차 허브 지역으로 떠오른 조지아주까지 해당 공약을 지지하면서 현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IRA 대응에 나섰던 현대자동차그룹과 국내 배터리 3사의 행보에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대선 공약 "美 IRA 폐지"
14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간지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The Atlanta Journal-Constitution)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조지아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IRA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국 브랜드 위주로 지나치게 편향된 혜택을 제거해 미국민들에게 전기차 구매 선택권을 넓혀주겠다는 의도이다.
특히 트럼프는 IRA 초기 목적이었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대규모 현지 투자를 모두 이끌어낸 만큼 폐지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아주 주정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이후 조지아주 내 추진되고 있는 전기차 관련 프로젝트는 40여개다. 이로 생겨난 일자리는 2만8400여개이며 예상 투자액은 227억 달러(한화 약 28조8700억 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55억4000만달러를 투자해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현지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연간 30만대 생산 규모로 짓고 있다. IRA에 대응하기 위해 당초 계획(2025년 1분기 생산)보다 6개월가량 앞당긴 2024년 3분기 가동을 목표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IRA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민주당 소속 존 오소프와 라파엘 워녹 조지아주 상원의원들은 이 같은 트럼프의 공약을 놓고 '터무니 없는 실수'라고 지적했다. 오소프 의원은 대변인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켐프 주지사와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함께 조지아주 발전에 결정적인 혜택을 주고 있는 IRA를 폐지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IRA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인 기후보건법안이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됐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 한해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가 세액공제되는 형태로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북미에서 만들거나 조립된 배터리 부품 50% 이상,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한 핵심 광물 40% 이상을 사용하면 각각 3750달러씩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전기차 보조금 세부 규칙도 추가됐다.
◇현대차, 조지아주 주정부 인센티브 변화 촉각
IRA가 폐지될 경우 현대차그룹 현지 전략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로컬 브랜드를 상대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리스 요금 할인 정책은 물론 현지 전기차 공장 조기 가동을 목표로 진행하는 파트너사와의 협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 역시 IRA 폐지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약 지지 차원에서 조지아주에 진출한 기업 대상 인센티브를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지 진출 기업들의 지지를 이끌기 위한 발언도 마다치 않고 있다.
켐프 주지사는 "IRA 시행에 따라 발생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특정 정치인의 공약에 대해서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공식 입장을 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배터리 3사, “특별한 영향없다…예의주시”
IRA 대응을 위해 현지 진출을 알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현지 전략 수정도 예상된다.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양사는 각각 현대차그룹과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와 협업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실제 논의로 이어지기에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는 모든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준다"며 "전기차 전환의 흐름을 미국이 주도하는 것은 맞지만 이미 전기차는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대세를 크게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에 반하는 발언으로 보인다"며 "트럼프가 아직 대선 후보로 확정된 것도 아니라 실제 논의를 진행하기에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가가 친환경 정책을 장려하고 있는 만큼 친환경에 반하는 정책을 펼칠리 없고 또 실제 트럼프가 IRA 폐지를 실행에 옮긴다고 해도 유럽 등 다른 국가가 장단을 맞춰주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RA 시행에 따른 일부 기업 특혜 조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배터리 업계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IRA는 미국 자국 중심 이기주의의 완결체로 정파적 문제는 아니고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결론적으로 철저히 미국 중심 생태계 만드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당선 시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 슬로건과도 IRA가 부합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