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경제 안보의 핵심은 제조업이며, 제조업의 핵심은 공급망 안정화다. 그리고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은 바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다."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은 2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사단법인 '소부장미래포럼' 주최 강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강연은 '글로벌 변화 속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 소부장'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강 사장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현실이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시장 규모 자체는 작지만 각 영역에서 소부장 기업들이 80~9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시장 규모가 큰 영역에서 10~20%의 점유율을 가졌다. 또한 주요 타깃 시장이 중국과 겹쳐 중국 기업의 빠른 추격이 위협이 되고 있다.
강 사장은 "강소·테크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며 "철저히 고객에 맞추고 품질 최고를 추구하며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사장이 이처럼 소부장의 혁신을 촉구하는 이유는 '경제 안보'의 등장에 있다. 강 사장은 과거 군사·정치적 개념이던 '안보'가 경제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은 경제 안보 강화를 목적으로 한 법안을 발효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유럽경제안보전략'을 통해 공급망 다변화를 꾀했고, 일본은 지난해 공급망 안정화와 첨단·그린산업 육성을 담은 '경제안보보장추진법'을 시행했다.
우리나라도 2019년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이는 처음으로 경제 관련 법안에 '안보'라는 단어를 포함시킨 상징적인 사례다. 지난해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으로 개정됐다.
공급망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글로벌 통상 환경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강 사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도약 △EU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를 주요 이슈로 짚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가장 우려되는 정책으로 상호 관세를 꼽았다. 강 사장은 "철강과 알루미늄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는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되므로 상대적 경쟁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상호관세는 출발 자체가 국가별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4월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상호관세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는 세계 인구의 63%,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신흥 거대 시장으로 소부장 기업들이 주목할 지역이다. 강 사장은 인도를 비롯해 사우스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을 다변화할 수 있다고 봤다.
강 사장은 미국의 관세와 함께 중국·일본과의 경쟁으로 국내 제조업이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국가 자체가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일본은 디지털·그린 전환으로 산업 재무장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TSMC의 제1·2공장을 유치하고 1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계획 발표 이후 밤낮없이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약 2년 안에 1공장 건설을 완료하며 반도체 업계의 놀라움을 샀다.
강 사장은 "소재·부품으로 버티며 다른 산업은 한국과 중국에 넘겼다고 여겨진 일본이 다시 기술을 토대로 제조업을 시작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중국은 경쟁자를 넘어서고 있고, 미국은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은 어떻게 해야할지, 그 답을 정부와 기업이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소부장미래포럼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해 국가 경제 도약에 기여하고자 지난 2023년 9월 출범했다. 약 60여 개의 산·학·연 회원사를 뒀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