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전구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고객사 요구로부터 시작됐다. 가격을 떠나 중국을 비롯해 공급망이 한쪽으로 치우쳐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 파트너로 포스코퓨처엠을 선택했다."
이소영 포스코퓨처엠 에너지소재기획본부장은 10일 전남 광양에서 열린 전구체 공장 준공식 직후 열린 기자단담회에서 "전구체 공장의 경쟁력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탈중국을 이뤘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올해 기준 광양 전구체 공장은 고객 수요에 따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 적격 제품으로 갖추고 있다"며 "다만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도 정책이 자꾸 바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의 영향도 받지 않는 생산체제를 갖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 韓 배터리 산업 '탈중국' 전략기지로 거듭난다
포스코퓨처엠의 전구체 공장은 기존 광양 양극재 공장 부지 내 총 2만2400㎡(약 6800평) 크기로 조성됐다. 연간 생산량은 4만5000t 규모로, 이는 전기차 50만대분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퓨처엠은 포스코그룹 차원의 니켈 공급망을 구축한 것에 이어 이번 전구체 공장 준공으로 '원료-반제품-양극재'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자급체제를 완성했다.
신공장에서 생산되는 전구체는 전량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 간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 '얼티엄셀즈'향 양극재 제조에 사용된다. 지난달부터 자체 생산한 전구체로 만든 양극재를 본격 납품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은 그동안 전구체 분야에서 중국산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전구체는 양극재의 전단계 소재로 배터리 성능과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소재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일부 내재화에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포스코퓨처엠이 광양 공장에서 자체 전구체를 활용한 양극재 생산에 나서면서, 국내 배터리 소재 공급망의 자립과 생태계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포스코퓨처엠을 향한 글로벌 고객사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이 본부장은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이 케즘을 겪고 있어 구체적으로 오픈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배터리셀, OEM 기업들과 정말 많은 대화들이 오가고 있다"며 "올해 시장이 침체라고 하지만 물밑으로 고객 요청에 응대하고 여러 협의를 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많으며, 시간이 지나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철저한 이물질 관리로 고품질 구현
포스코퓨처엠 전구체 공장은 품질 최우선을 원칙으로, 극도로 까다로운 이물 관리 체계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기자단이 찾은 전구체와 양극재 공장 내부는 한 치의 이물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점’ 품질 철학이 체감되는 현장이었다.
실내 온도가 36도에 육박하는 환경에서도 작업자들은 덧신과 위생모자, 방진 마스크, 보안경까지 착용해야 한다. 보호구 미착용 시엔 1차 경고, 2차 1개월 출입 정지, 3차 영구 출입 정지라는 엄격한 조치가 따른다. 또 제습기를 활용해 내부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하고, 포장 공정은 항온·항습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양극재 공장은 이보다 한층 더 강화된 관리가 이뤄진다. 전구체보다 민감한 비자성 이물질 유입을 막기 위해 입장 전 에어샤워를 거쳐야 하고, 이중 셔터 도어를 통해 외부 공기와 이물질 유입을 원천 차단한다.
포스코퓨처엠이 전구체와 양극재 생산 전반에 걸쳐 이물질 관리와 환경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이유는 제품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세한 이물조차 제품의 불량으로 간주될 수 있어, 고객과의 신뢰는 물론 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재민 광양 양극재 공장장은 "4.5t 단위로 포장된 제품에서 5~7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이물 하나만 발견돼도 해당 로트 전체가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며 "이는 고객사의 전량 반품으로 이어질 수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 초기 고부가 N86에 집중…향후 LMR 등 전환도 검토
총 3400억원이 투입된 전구체 공장은 2022년 12월 착공해 3년여 만인 지난달 본격 생산을 개시했다. '용해-반응-세척-건조-분체-포장'의 6단계 공정을 모두 갖춘 이곳은 10개 라인으로 구성됐다. 핵심 설비인 반응기는 20기를 보유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해 공정 전체를 중앙 통제실에서 모니터링한다.
이번에 준공된 라인은 하이니켈계열인 N8X 단결정 소재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향후 리튬망간리치(LMR) 등 신제품 생산을 위한 일부 라인 전환을 검토 중이지만, 당분간은 '얼티엄캠(Ultium CAM)'에 공급되는 고부가 N86 계열 제품 생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한동수 광양양극소재실장은 "설비 자체는 잘 가동되고 있지만 6개 공정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게 핵심 과제"라며 "현장 오퍼레이터 공정 노하우가 쌓이면서 수율과 생산능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구체 공장 증설과 관련해서는 당장 계획은 없다면서도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본부장은 "현재 광양에 하이니켈 NCA 양극재 공장도 건설 중인데 인근 부지에 양극재 3만t 체제 기준 2개 정도 더 들어갈 공간이 있다"며 "국내에서 추가 생산 능력이 필요하다면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은 있다"고 부연했다.
◇ 양극재 생산라인에 '전구체 내재화' 본격 시동
포스코퓨처엠은 광양 양극재 공장에서 자체 전구체를 활용한 양극재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2공장에서는 일부 라인에 기존 사용하던 중국산 전구체를 완전히 제거한 뒤, 내재화한 전구체를 투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다.
광양 양극재 2공장은 7층 구조로, 원료는 최상층인 7층에서 투입된 뒤 중력 흐름을 따라 6층 믹서에서 리튬과 첨가제가 혼합되고, 1층 소성로에서 소성 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생산된다. 소성로는 1차(약 800도)와 2차(300~600도)로 나뉘며, 총 길이는 쿨링존을 포함해 약 55m에 달한다. 전구체와 리튬은 도가니에 5kg 단위로 투입돼 고온에서 구워지는 방식이다.
광양 양극재 공장은 연간 9만t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춘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수준의 양극재 생산기지다. 60kWh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약 100만 대에 해당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 인근 부지에 연산 5만2500t 규모의 하이니켈 NCA 양극재 공장도 추가로 건설 중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2023년 국내 최초로 하이니켈 NCMA 단결정 양극재 양산에 성공했다. 이후 13개 생산라인을 활용해 NCM, NCMA, NCA 등 다양한 계열의 양극재를 생산 중이다. 최근에는 LMR 양극재 양산 체제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본부장은 "양극재는 결국 전구체에 리튬을 섞어 구워내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상으로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양극재 후단 공정만으로는 고객사 요청을 모두 수용할 수 없지만 전구체를 직접 생산하면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