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르네상스] ①거스를 수 없는 '대세'...1000조 글로벌 원전 각축전

2024.11.05 09:00:01

세계 곳곳서 원전 부활
팀코리아 앞장…정부가 밀고 기업이 당기고

'원전은 기후변화의 대안인가?' 그 대답은 지난 2001년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나왔다. 결론은 '대안이 될 수 없다'였다. 23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미국과 영국, 한국 등 주요 22개국은 지난해 총회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확대하자고 합의했다. 퇴물 취급받던 원전이 탄소중립의 수단으로 부상한 오늘날, 한국은 그 중심에 있다. 한국은 지난 1978년 고리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원전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원전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더구루는 한국이 주목하는 원전 도입국을 비롯해 주요국의 정부·에너지 기관·기업 등을 만나 △각국 원전 정책 △민·관 파트너십 △미래 원전 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한국 원전 산업의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구루=정예린 기자] 건설이 중단됐던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가 허가를 받은 지 5년 만인 지난달 착공했다. 미국에서는 45년 전 멈췄던 '쓰리마일 아일랜드(Three Mile Island)'와 해체 절차에 돌입한 '팰리세이즈 원전'도 재가동된다. 유럽 역시 원전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전 부활의 시대'다. 

 

지난 40여 년간 멈췄던 글로벌 원전 시계가 다시 작동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본지와 만난 세계 각국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원전이 높은 전력 수요와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원전 르네상스'가 촉발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K-원전을 앞세워 100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글로벌 원전 시장 수주를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당국와 한국수자원공사 등 기업으로 구성된 '팀코리아' 깃발을 전 세계 원전에 꽂는다는 포부다. 국내외 생태계를 구축해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 '에너지 위기' 해결사대형 사고 우려까지 상쇄

 

원자력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요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으며 다양한 기술 개발 등이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하지만 미국 쓰리마일 아일랜드(1979년)·체코 체르노빌(1986년)·일본 후쿠시마(2011년) 등 10~20년 주기로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원전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안전을 이유로 등한시되며 원전 산업이 암흑기에 빠졌다.  

 

오랫동안 축적된 거부감까지 상쇄하며 원전에 대한 여론이 변화하게 된 배경은 인공지능(AI)이다. 생성형 AI를 학습시키는 데는 기존 소프트웨어의 수백 배 이상 전력이 쓰인다.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하는 AI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용 에너지원은 원자력 뿐이다.

 

기후변화와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위기'도 한몫을 했다.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배출이 꾸준히 증가하며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다. 지구 온도 상승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으면서 외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 등 에너지 공급망 문제도 대두됐다. 이로 인해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원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 인식이 높아졌다. 원전 도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문제는 비용과 공급망 안정화다. 오랫동안 원전 산업에 대한 투자가 소극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술이 뒤처지고 기업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금액과 오랜 건설 기간이 대형 원전의 장애물로 떠오르자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마이크로원자로 등이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 '탈원전→친원전' 글로벌 트렌드

 

원전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작년 7월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새롭게 건설된 원전인 조지아파워의 보글(Vogtle) 3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하며 미 원전 산업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홀텍 △뉴스케일파워 △테라파워 △카이로스파워 △오클로 등을 통해 SMR 건설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신규 원전 뿐만 아니라 폐원전 재가동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펜실베이니아 쓰리마일 아일랜드의 경우 이를 소유한 미 최대 원전 운영사 '컨스텔레이션에너지'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력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고 있다. 홀텍은 팰리세이즈 원전을 미시간주 주정부의 요청으로 재가동키로 했다. 해체 절차(decommissioning)를 밟고 있던 원전이 다시 운영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탈원전 기조를 버리고 대규모 원전 도입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EU)은 2022년 친환경 에너지로 정의하는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올해엔 친환경 기술에 원전을 포함하는 탄소중립 산업법이 통과됐다. 이를 반영하듯 체코와 폴란드, 프랑스, 영국 등은 앞장서서 원전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 연장을 추진한다. 원전 건설을 금지했던 스웨덴도 2045년까지 원전 10기를 짓겠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선 탈원전을 외쳤던 한국, 일본이 관련 정책을 폐기한 데 이어 대만도 전략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 K-원전 이름 알린다…정부-기업 간 협력이 토대 

 

우리나라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카라 원전 사업 최종 사업자에 선정되며 '원전 수출국' 타이틀을 달았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일본에 이어 세계 6번째다. 한국형 원전(APR-1400) 4기를 수출했다. 2021년 1호기를 시작으로 올해 4호기까지 준공을 완료했다. 

 

세계 각국에서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급증하자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전 사업은 정부 발주 프로젝트인 만큼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시설인 만큼 단순히 산업 측면이 아니라 외교·정치적 관계가 주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팀코리아'를 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카라 원전 등 상대적으로 최근까지 원전을 건설한 이점을 적극 살려 새로운 수주를 따낸다는 전략이다. 체코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폴란드, 영국 등도 노리고 있다. 해외 수주가 국내 원전 부흥을 위한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SMR의 경우 정부 주도로 한국 고유의 혁신형 SMR을 개발해 수출을 꾀하는 한편, 미국 기업들과도 파트너십도 강화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물산, GS에너지는 뉴스케일파워, 현대건설은 홀텍 등과 SMR 시장 개척에 협력 중이다. 

 

K-원전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원전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적극 드러내고 있다. 원전을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과 원전 수출을 통해 원전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신성장동력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12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를 선정했다. 국내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잡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연내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도 마련한다. △미래지향적 원전 정책 4.0 △SMR 선도국 도약 전략 △원전산업 펀더멘털 고도화·수출산업화 전략 등을 로드맵에 반영한다. 또 재원 확보와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원전 산업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전 산업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원전은 대한민국 발전과 번영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견인차로, 원전이 늘어야만 반도체와 AI 등 첨단 산업을 크게 키울 수 있고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달성도 가능하다"며 "정부는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 취재 사업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정예린 기자 yljung@thegur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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