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일본 소프트뱅크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 개발에 본격 착수하며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판도를 예고했다. 직접 제조가 아닌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통한 설계 자산(IP) 중심 전략을 채택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협력사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소프트뱅크에 따르면 미야카와 준이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현지시간) '2024 회계연도 실적 요약 브리핑’에서 "AI의 중심이 추론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대비해 고성능·저전력 특성을 갖춘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할 것"이라며 "핵심 샘플 개발을 위해 향후 2년간 약 30억 엔(약 287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개발은 제조가 아닌 'IP 중심' 전략에 방점이 찍혀 있다. 소프트뱅크는 메모리를 직접 생산하는 대신 설계 자산을 확보해 파트너사와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장 유력한 파트너사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소프트뱅크와 오픈AI 간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둘러싼 3자 회동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일본 방문 행보도 이같은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또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는 소프트뱅크 자회사 Arm을 중심으로 전략적 협력을 이어왔다.
특히 지난 2월 이 회장이 서울 서초사옥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3자 회동을 가진 이후 협력 수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평가다. 당시 논의의 중심에는 약 7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 '스타게이트'가 있었다.
스타게이트는 소프트뱅크와 오픈AI가 공동으로 일본 오사카에 구축 중인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로, 내년 운영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소프트뱅크는 지난 3월 샤프의 LCD 패널 공장을 약 1000억 엔에 매입하고, AI 전용 하드웨어 설계 및 생산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 물색에 나섰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이 프로젝트에서 반도체 개발과 생산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협력사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생산 능력 이상의 전방위 반도체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연산에 필수적인 메모리부터 자체 설계가 가능한 시스템 반도체, 5나노미터(nm) 이하 첨단 공정의 파운드리 역량까지 모두 갖춘 기업은 삼성전자 외에 세계적으로 손에 꼽힌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HBM3E, HBM5 등 차세대 AI 메모리 공급에 속도를 내며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으며, AMD·브로드컴·마벨 등과도 긴밀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의 잇단 일본 방문도 이러한 협력 구도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한다. 이 회장은 지난달 초 약 일주일간 일본에 머물며 현지 소재·부품 공급망을 점검하고 주요 경제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이어 이날 개막하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한국의 날’ 행사 참석을 위해 다시 일본 출장길에 오른다. 오사카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손 회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AI 협력 방안이 더욱 구체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소프트뱅크는 작년 기준 전년 대비 13% 증가한 9890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AI 중심의 신성장 전략이 본격화되며, 올해 영업이익 목표는 1조 엔으로 상향 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