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현수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역대급 실적 달성에도 불구하고 창사 이래 첫 전면 파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했다. 법원이 생산 차질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우려해 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음에도, 노조가 파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외 신인도가 벼랑 끝에 몰렸다. 급기야 6400억원 규모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이 한순간에 물거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않다.
23일 인천지법 민사합의21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노조를 상대로 낸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약품 변질·부패 방지 작업과 충전 등 마무리 공정에서의 쟁의행위를 금지했다.
사측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파업으로 인해 공정이 중단될 경우 배치(Batch) 물량 폐기 등으로 발생하는 손실액은 약 6400억 원에 달한다. 법원 역시 이러한 경제적 타격과 의약품 공급 중단이 공익에 미칠 악영향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노조는 법원이 금지한 일부 공정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예정대로 5월 1일 노동절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 강점이었던 ‘노조 리스크 제로(0)’ 공식이 깨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핵심은 배양 공정에 대한 쟁의행위 금지가 기각됐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파업이 시작되면 배양 중인 반제품 전체가 폐기되고 크로마토그래피, 바이러스 여과와 같은 정제 앞 단계도 중단된다"면서 "손해의 절대적 대부분은 배양 공정 중단에서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납품 지연 등으로 인한 회사 신뢰도 하락 등 간접 손해까지 더하면 사측이 입을 손실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번 법원 결정과 별개로 파업 자체가 현실화될 경우 단기 손실을 넘어 사업 기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바이오의약품 연속공정 특성상 한 순간의 지연도 전체 배치 품질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노조 측이 고객사 협의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으나 공정이 중단된 배치를 고객사가 인정하기보다는 재생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기적 타격도 우려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를 고객으로 두는 위탁생산(CMO) 업체로 납기 신뢰성이 곧 수주 경쟁력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당장의 공정 중단으로 인한 폐기 손실뿐 아니라 고객사의 신뢰 훼손, 손해배상 청구, 향후 수주 차질로 이어지는 복합적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역대 최대 호실적이 자체적 요인이 아닌 노사 갈등으로 꺾일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난 23일 151만 4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 1월 15일 196만5000원에서 지속 하락해 3개월 새 23% 가까이 추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한 주주는 "지금까지 안정적인 수주 확대와 생산 능력 증설을 바탕으로 프리미엄을 받아온 기업인데 이번 파업 리스크는 단순한 일회성 손실 문제가 아니라 그 프리미엄의 근거 자체를 흔드는 일"이라면서 "그 피해가 주가에 즉각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항고를 통해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항고심에서 결론이 나오더라도 파업 예고일까지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시간은 극히 촉박하다. 위탁생산(CMO) 사업 특성상 한 번 손상된 고객사 신뢰는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외 공급망 다변화를 검토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업 후유증은 노사 갈등 기간보다 더 길고 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조 측은 "파업으로 인한 실제 직접 손실은 하루 매출 수준인 약 128억 원에 불과하며 사측이 주장하는 6400억 원은 과장된 수치"라는 입장이다. "공정이 중단되더라도 즉시 전량 폐기로 이어지는지는 고객사와 협의하고 결정할 문제"라며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공정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어 일부만 멈춰도 전체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글로벌 고객사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의 파업 예고만으로도 차기 프로젝트 계약 시 삼성바이오를 기피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