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제조업의 뿌리다'. 이는 더 이상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다. 국내 제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승(必勝) 전략'이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미래 모빌리티 보급 확대 등 산업 전반이 고도화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제조 공정의 혁신만으로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소재와 부품 산업군까지 함께 발전해야 진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국 기업들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發)의 관세 전쟁으로 외부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세계로 가는 K-소부장' 기획은 대내외 위기 상황 속에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기술·공급망 등 경쟁력 강화 전략을 집중 조명하려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책적 지원 방향도 함께 모색한다. -편집자주-

[더구루=오소영 기자] '우주인터넷을 이용하고 자율주행차를 타며 인공지능(AI)과 공생하는 시대' 현실로 다가온 미래에 반도체는 핵심 부품이다.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커지며 수명을 예측하고 불량률을 잡는 기술도 중요해졌다. 국내 유일의 반도체 신뢰성 평가·종합 분석 전문 회사인 큐알티(QRT)가 주목받는 이유다.
큐알티는 AI에 이어 항공우주와 방산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미국 우주 산업계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며 장비 개발에서도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 AI 다음은 '우주·방산'

정성문 큐알티 글로벌마케팅본부장(전무)은 경기 수원시 한국나노기술원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주 부품 분야의 'K-에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큐알티가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큐알티는 2014년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SK하이이엔지 QRT사업부에서 분할됐다. SK하이닉스의 사업장이 있는 경기 이천에 본사를 뒀고, 신뢰성 평가와 종합 분석 사업에 중점을 뒀다. 신뢰성 평가는 스트레스를 가한 후 반도체가 정상 작동하는지 살피는 반면, 종합 분석은 반도체 불량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큐알티는 분할 직후 김영부 대표의 주도로 우주 반도체 사업을 준비했다. 2020년 우주 방사선 측정장비 개발, 이듬해 통신용 RF 반도체 수명 평가 장비 개발 국책과제를 수행했다.
큐알티가 우주 사업을 키우는 이유는 수익성에 있다. 우주 부품은 일반 부품 대비 10~100배 비싸다. 온도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하고 내방사성을 지녀야 한다. 까다로운 우주 환경을 견뎌야 해 신뢰성 테스트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초소형 위성이 널리 쓰이며 QRT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 전무는 "중대형 위성은 대부분 수입 부품을 활용해 신뢰성 테스트도 해외에서 했는데, 초소형은 다르다"며 "부품 가격이 비싸면 초소형 위성을 많이 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렴한 부품과 국산화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큐알티가 신뢰성 평가를 맡게 된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덧붙였다.
큐알티는 매년 한국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우주 반도체 기술을 논의하는 '첨단반도체안전혁신콘퍼런스(ASSIC)'를 개최했다. 지난 5월에도 300여 명을 초청해 최신 기술과 현안을 공유했다. 이처럼 고객사와 적극 소통하며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정 전무는 "미국 우주 관련 기관, 다수의 민간업체와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큐알티는 방산 시장도 넘보고 있다. 정 전무는 "AI 데이터센터부터 우주, 방산까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동안 미리 준비했다"며 "고객이 필요할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 美서 신뢰성 장비 '엄지척'…장기 지원 필요

큐알티는 10여 년 전 글로벌 기업의 의뢰로 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무선주파수(RF) 반도체 신뢰성 평가 장비를 개발해 고객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장비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 전무는 "요리하는 어머님들이 요리기구에 대해 가장 잘 피드백을 줄 수 있듯이, 반도체 신뢰성 평가 장비에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건 장비를 직접 쓰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장비를 판매하지 못하더라도 직접 쓸 수 있어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출 수 있다"고 부연했다.
큐알티는 △방사선 측정 장비 △통신용 RF 수명 평가 장비 △AI 카드 번인 테스트 장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신뢰성 평가 장비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RF 반도체 수명을 파악할 수 있는 'Q-RoLA'를 출시해 시장에서 호평을 얻었다. Q-RoLA는 고온과 고전압, 고전류 환경에 장시간 노출시켜 반도체 수명을 측정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장비다. 수명 예측의 정확도가 높고 AI를 기반으로 자동 측정이 가능한 점도 Q-RoLA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큐알티는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 마이크로웨이브 심포지엄(IMS) 2025'에서 Q-RoLA를 처음 공개했다. 정 전무는 "여러 글로벌 고객으로부터 견적 요청을 받았다"며 "일이 많아져 인력도 보충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큐알티는 현재 장비 사업에서 약 10%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향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고객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큐알티는 오는 9월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 'EuMW'에서 Q-RoLA를 소개하고, 같은 달 벨기에에서 개최되는 유럽 방사선 기술 컨퍼런스 'RADECS'에도 참가한다. 현지 행사를 활용해 고객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정 전무는 큐알티를 비롯한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바뀌면 지원책도 바뀐다"며 "유니콘이 될 수 있는 소부장 기업이 많은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사장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기업과의 상생 구조도 과제다. 정 전무는 세계적인 파운드리 회사 대만 TSMC의 사례를 들며 "TSMC는 파운드리만 하고 부수적인 사업은 소부장 기업들에 맡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이 모든 걸 하려는 문화는 바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