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진유진 기자] 글로벌 담배 기업 BA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철수한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현지 생산을 중단한다고 공식 입장을 통해서다. 불법 담배가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합법 제조 기반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판단이다.
24일 BAT에 따르면 남아공 법인 BATSA(BAT South Africa)는 하우텡주 하이델베르크에 위치한 담배 제조 공장을 올해 말까지 폐쇄하고, 공장 기반 궐련 제조를 전면 중단한다. 해당 공장은 지난 1975년 가동을 시작해 약 50년간 운영돼 왔지만, 불법 담배 확산에 따른 판매 감소로 현재 가동률은 35% 수준에 머물러 있다.
BATSA는 불법 제품이 합법 담배를 대체하면서 현지 생산이 더 이상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니 몰로토 BAT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기업·규제 담당 총괄은 "시장 4분의 3이 불법 제품인 상황에서는 어떤 기업도 버틸 수 없다"며 "수년간 효율화와 비용 절감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장 폐쇄로 약 230명의 직원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원부자재 공급업체와 물류·하청업체 등 지역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BATSA는 노동법에 따라 노조·직원들과의 공식 협의 절차를 진행 중이며, 해당 절차는 오는 3월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다만 BATSA는 남아공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향후에는 수입 기반 공급 체제로 전환해 성인 소비자 대상 사업은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제조 부담과 규제 리스크를 줄이면서 시장 내 입지는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태 근본 원인으로 정부의 규제 정책과 단속 부재를 지목한다. BATSA는 지난 2020년 팬데믹 기간 시행된 담배 판매 금지 조치와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소비세 인상, 신규 담배 규제 법안 추진 등이 합법 제품과 불법 제품 간 가격 격차를 키워 불법 시장을 키웠다고 주장해왔다. 회사 측은 불법 담배로 인한 연간 세수 손실이 약 280억 랜드(약 2조512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불법 유통 문제가 담배를 넘어 주류·의약품·소비재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BAT 결정이 남아공 전반의 산업·재정 리스크를 보여주는 신호라는 평가도 나온다. 불법 거래에 대한 실효성 있는 단속 없이는 합법 제조업 기반의 추가 붕괴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BATSA는 불법 담배 근절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면 현지 생산 재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행 규제 강화와 세금 인상 기조가 유지될 경우 시장 왜곡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