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진유진 기자] 지난달 25일, 전북 익산에 있는 하림의 생산 현장을 찾았다. 한 마리 닭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 하림이 어떻게 라면과 즉석밥까지 만드는 종합식품기업으로 확장하고 있는지를 따라가는 '하림푸드로드' 체험이었다.
하림푸드로드는 크게 3가지 축이다. 하나는 닭고기 종합처리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된 '치킨로드', 다른 하나는 라면·즉석밥·만두 등 가공식품이 생산되는 '키친로드(퍼스트 키친)'다. 여기에 물류까지 아우르는 'FBH(풀필먼트 바이 하림)'까지 더해져 하림이 말하는 '푸드 트라이앵글'이 완성된다.
◇조부모 닭부터 내 밥상까지…1년 반의 생명 사슬
"할머니 닭 한 마리에서 시작된 생명이 6000~8000마리까지 이어집니다."
하림의 설명은 우리가 먹는 한 마리 닭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를 단번에 보여줬다. 우리가 먹는 닭은 단순히 사육된 게 아니라, 원종계(조부모 닭)→종계(부모 닭)→실용계(식용 닭)로 이어지는 생산 계보를 따라 자란다. 이 전 과정을 더하면 한 마리 닭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 1년 반 이상이 걸린다.
하림은 닭을 기절시키는 데 전기 충격 대신 가스 스터닝(Gas Stunning)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닭에게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고통 없이 도계가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도계 후에는 에어칠링(Air Chilling) 공정을 통해 교차오염 없이 닭 체온을 2℃까지 빠르게 냉각한다. 워터칠링(물에 담그는 방식)보다 위생적이고, 닭 본연의 육즙과 풍미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게 하림의 설명이다.

◇"여긴 라면공장입니다"…하림의 새로운 부엌 '퍼스트 키친'
하림의 K1~K3 생산라인은 '치킨 회사'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충분했다. K1에서는 육수와 소스를 베이스로 냉동 볶음밥·만두 등이 생산된다. K2는 하림의 대표 간편식인 '더미식 즉석밥'이 제조되는 공간이다. K3에서는 라면이 생산된다. 유니짜장, 오징어라면, 장인라면 등 총 70여 종에 달하는 제품이 이곳에서 탄생한다.
특히 K2의 즉석밥 라인은 '밥의 본질'을 재정의했다. 어떤 첨가물도 없이 쌀과 물만으로 만든 즉석밥은 Class 100 클린룸에서 생산돼 10개월의 유통기한을 자랑한다. 일반 즉석밥보다 1개월 더 길다. 첨가물 없는 밥인데도 맛과 신선함이 유지되는 이유는, 쌀알을 누르지 않는 포장과 스팀 뜸들이기 등 정교한 공정에 있었다.
K3의 라면 공정 역시 특별했다. 일반 라면이 물반죽을 사용하는 반면, 하림은 20시간 이상 끓인 닭 육수로 반죽해 풍미를 끌어올린다. 가루스프 대신 액상스프를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있으며, 유탕·건면 라인도 추가 증설 중이다.
◇모든 공정을 연결한 끝판왕, FBH와 멀티박스
하림은 기자에게 '신선함'의 정의를 물었다. 하림은 "식품의 본질은 맛이고, 맛은 신선함에서 온다"며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가장 빠르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 하림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하림의 이 식품 철학은 FBH 물류센터에서 완성된다. 이곳에선 생산된 제품을 냉동·냉장·상온 제품을 구분 없이 하나의 '멀티박스'에 포장해 소비자에게 직배송한다. 멀티박스는 공장 내부에서 직접 생산되며, 냉매·완충재 등도 모두 자체 조달한다. 불필요한 포장재를 줄여 친환경 물류와 저탄소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고집인가, 신념인가'…적자에도 밀어붙이는 '더미식' 전략
하림의 프리미엄 간편식 브랜드 '더미식'은 지난 2021년 출시 이후 고가 전략을 고수하며 주목받고 있다.
다만 수익성은 아직이다. 지난해 하림산업의 영업손실은 1276억원. 더미식의 고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그러나 하림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신선함'과 '무첨가 원칙'을 밀어붙이고 있다. 모든 라면은 비법 육수를 사용하고, 즉석밥엔 방부제가 없다. 이 원칙이 소비자에게 '고가의 이유'로 납득되느냐가 향후 성패를 가를 관건이다.

이번 하림푸드로드는 단순히 공장을 둘러보는 행사가 아니었다. 하림의 철학과 전략이 공정 하나하나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
가공식품이 편리함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진짜 요리'라는 하림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공정 하나하나에 깃든 '신선함'에 대한 집요한 고집이 '하림'이라는 이름을 새로운 식문화 플랫폼으로 바꾸고 있다. 익산에서 출발한 이 실험이 국내 식품산업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