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 입에 쏠린 200억…R.J.레이놀즈 '흡연 피해' 소송 막바지

2026.01.30 13:31:45

폐 이식 흡연 피해, 美 배심 평결 촉각
위험 인지 vs 기업 책임…판단 시험대

[더구루=진유진 기자] 미국 담배 기업 R.J.레이놀즈를 상대로 한 흡연 피해 손해배상 소송이 배심원 판단을 남겨두고 막바지에 이르렀다. 최근 국내 법원이 담배 기업의 책임을 부정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폐 이식 수술까지 받은 전(前) 흡연자의 고통에 대해 1400만 달러(약 200억원) 배상 책임을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 플로리다 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27일(현지시간)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전 흡연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최종 변론을 들었다. 원고는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14년간 심각한 건강 악화를 겪었고, 결국 중증 호흡부전으로 폐 이식에 이르렀다며 R.J.레이놀즈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플로리다에서 장기간 이어져 온 '엔글(Engle) 파생 소송'의 일환이다. 과거 담배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집단소송 판결을 토대로, 개별 흡연자나 유가족이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원고 측은 담배의 중독성과 위험성이 충분히 관리·통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기업 책임을 강조했다.

 

R.J.레이놀즈는 담배의 위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해당 흡연자 역시 이를 인지한 상태에서 흡연을 지속했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기존 담배업계의 방어 논리를 유지한 셈이다. 배심원단은 회사의 법적 책임 여부와 함께, 책임이 인정될 경우 배상액 규모를 판단하게 된다.

 

이 같은 미국 내 흐름은 최근 국내 판결과는 대조적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제기한 53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간 역학적 상관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개별 환자의 흡연 이력과 발병 간 직접적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국내 법원은 흡연으로 인한 질병 발생을 개인 책임의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에 대한 경고가 과거에도 존재했고, 제조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논리다. 이에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과학과 법의 괴리가 크다"며 유감을 표했지만, 판단을 뒤집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미국은 지난 1998년 50개 주(州) 정부들이 담배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해 총 2460억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받아낸 전례가 있다. 흡연자 치료에 들어간 공적 의료비에 대해 R.J.레이놀즈와 필립모리스 등 담배 기업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소송 역시 개인 피해 차원이지만, 배심원 판단에 따라 담배회사 책임 범위가 다시 한번 확대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단기 재무 부담을 넘어 담배 기업의 법적 리스크 관리와 ESG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글로벌 담배사들이 무연·저위험 제품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는 배경에는 규제 강화뿐 아니라 반복되는 소송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진유진 기자 newjins@thegur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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