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이강욱 SK하이닉스 패키징개발 담당(부사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성과의 배경으로 고객 협업 중심의 사업 모델과 축적된 패키징 기술력을 꼽았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D램 시장 1위에 오른 SK하이닉스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확대하고 선두 자리를 공고히 할지 주목된다.
18일 일본 니혼자이게이(닛케이)에 따르면 이강욱 SK하이닉스 패키징개발 담당(부사장)은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에는 '고객 퍼스트' DNA가 있다"며 "고객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요구사항을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었던 점이 경쟁 우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HBM은 기존 범용 D램과 달리 반완성품을 제공하고 고객이 그래픽 처리장치(GPU)와 결합한 성능을 직접 검증하며 과제를 발견하는 구조다. SK하이닉스가 HBM3, HBM3E까지 업계를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같은 협업 체계 중심의 산업 생태계와 SK하이닉스의 조직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이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 부사장은 "HBM의 경우 범용 메모리와 달리 GPU와 HBM을 조합한 시스템인패키지(SiP)의 성능을 고객이 평가하면서 처음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이 많다"며 "HBM 제조사는 열린 태도로 투명성을 높이고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 개발과 생산 능력 확보 역시 경쟁력의 원천으로 지목했다. 이 부사장은 "HBM 사업에서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생산 능력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요구된다"며 "기술 개발과 생산 능력 양면에서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우리 경영진이 지속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고객 요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기술 개발과 양산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부사장은 인공지능(AI)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HBM 수요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맞춤형 제품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고객층과 활용 분야가 다변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우리 HBM의 고객은 다변화되고 있으며 고객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며 "HBM에 대한 요구에도 폭이 넓어지고 있으며 고객별 다양한 요구를 바탕으로 어떻게 커스터마이즈할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에는 주로 학습(트레이닝)용 AI 칩에서 쓰였지만 이제는 추론(인퍼런스)용으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추론용 AI 가속기는 고도화되고 있어 HBM의 수요와 성능 요구도 높아질 것"이라며 "고객군도 GPU 업체뿐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CSP)까지 다양해지고 있고 현재 일부 기업과도 공급 계약을 논의중"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했으나, 2세대(HBM2E)에서 경쟁력이 일시적으로 주춤했다. 이후 2018년 3세대(HBM2E) 개발 당시 1위를 되찾기 위해 패키징 공정 혁신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발열과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R-MUF(대량 칩 접합 몰딩 방식) 기술을 도입하며 신뢰를 확보했다.
이 부사장은 "일본 소재·장비 업체와 협력하면서 MR-MUF 관련 재료, 제조 장비 조달 등의 문제를 해결했고 고객 샘플 검증을 거쳐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확실성을 수반했지만 경영진이 패키징뿐만 아니라 설계, 디바이스 부문과의 연계 중요성을 이해하고 지원해줘 회사 전체가 ‘원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기술 전략으로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본딩'을 준비 중이다. 이 부사장은 "20단 적층 시점부터 본격 적용 가능하며, 일부 고객과 시스템 레벨 평가를 진행 중"이라며 "MR-MUF와 병행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맞춰 제공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HBM 수요 확대에 힘입어 올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36%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34%)를 제치고 선두에 오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도 12조2340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반기 실적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