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등용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현지에선 부정 여론이 확산 중이다. 체코 기업과 엔지니어들이 원전 사업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체코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지르지 누자 체코 건설기업가연합회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수원은 체코 설계자와 엔지니어에 관심이 없으며, 체코 건설사 자존심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우건설과 두산 같은 한국 기업이 일을 하고 하청도 한국기업이 독식하면서 체코 기업은 공급업체 사슬에서 3·4번째가 될 것”이라며 “단계가 내려갈 때마다 계약 금액도 약 10% 감소하는 만큼 체코 기업의 마진과 수익도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과정에 체코 기업 60%를 참여시키기로 합의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될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누자 회장은 “체코 기업의 참여 약속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각서 수준에 불과하다”며 “결국 체코 협력 업체들은 뼈만 앙상한 채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체코 테멜린 원자력 발전소 2기의 건설을 담당했던 원자로 건설 전문가인 바츨라프 마티아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마티아스는 “한국은 체코 엔지니어와 설계자들의 수준과 자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한수원은 건설·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전문 역량이 부족했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비슷한 방식으로 두코바니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의 에너지 전문가인 안나 포르토바는 “체코 기업들이, 두코바니 프로젝트 하청업체 대부분을 한국 파트너가 수주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르토바는 “한국은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시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프로젝트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생각만큼 체코 일자리가 늘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왔다. 현지언론 'ekonomickydenik'는 "한국이 바라카 발전소 건설 작업을 위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를 고용했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이 폴란드 플로츠크에 있는 정유공장 공사에서도 상황이 비슷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건설사가, 체코 노동자 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다른 나라 노동자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또 다른 현지언론 'newstream'의 한 기자는 "슬로바키아에 있는 기아의 질리나 공장에 갔는데 자동차 생산에 쓰이는 판금 롤은 한국에서 왔고 직원들은 퇴근할 때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방 검사를 받아야했다"며 한국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앞서 체코 정부는 지난해 7월 한수원을 필두로 한 ‘팀코리아’를 총사업비 20조원대로 추산되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현재 한수원은 다음 달을 시한으로 체코 발주처와 최종 계약을 위한 세부 협상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