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연구·개발(R&D)에 매년 수천억 원을 쏟으면서도 방향성이 불분명하고 사업화 노력에 소홀해 내부 뭇매를 맞았다. 직접 연구하기 어려운 과제를 선정하고 이미 확보했거나 연구 중인 기술을 R&D 로드맵에 포함하지 않아 중복 투자의 우려가 제기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작년 4분기 내부감사에서 R&D 목적이 불분명하고 사업화 고려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실이 1994~2019년 발표된 R&D 혁신 방안과 업무 보고 등을 분석한 결과 해당 문서에 R&D 목표와 방향은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경영전략의 변화에 따라 개별 문서에서 목적이 달라졌고 R&D 목표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 차이도 컸다.
R&D 로드맵에는 한전이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제조와 설치, 시공 관련 연구가 많았다. 2012~2018년 진행된 주력 연구 개발 과제 518건 중 제품 개발에 대한 연구과제는 수십여 건이었다. 특히 태양광 제품 제조 연구에 수백억 원이 투입됐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연구에서도 한전은 신재생에너지원에 집중했다. 신재생 계통 연계, 분선전원의 통합 운용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는 일본 중앙전력연구원(CRIEPI), 미국 전력연구소(EPRI) 등 해외 전력 회사와 대조적이다. 사업화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단편적인 기술을 나열해 로드맵을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R&D 로드맵에 진행 중인 연구나 이미 확보된 기술을 언급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 됐다. 확보할 기술에 대한 계획만 나와 전반적인 개발 현황을 확인하기 어렵고 R&D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떨어트렸다.
서남해 해상풍력 개발 과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전은 2011년부터 8년간 2.5GW 서남해 해상풍력 개발을 위한 실증단계 연구(이하 서남해 실증연구)를 진행해왔다. 이후 신규 과제를 정해 추진했지만 해당 사업 계획서에는 선행 연구가 언급되지 않았다. 2016년 착수한 풍력발전 진단 감시 시스템 연구 과제 사업 계획서에도 이전에 취득한 관련 특허가 누락됐다.
한전 감사실은 "R&D의 정체성을 명확히 설정해 규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사업 분야를 명확히 한 후 사업모델을 정하고 세부 기술을 포함해 종합적인 관점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한전은 2019년 R&D에 3630억원을 퍼부었다. 작년 3분기까지 집행한 금액은 2159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