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등용 기자]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경계의 붕괴이며 보호산업이었던 금융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은행뿐 아니라 거대 IT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와 플랫폼에 우리의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겠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지난해 3월24일 취임 후 첫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이 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며 우리은행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우리금융은 지난 2020년 3월 그룹 부사장이었던 이 행장을 그룹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일반적으로 금융그룹 사내이사에 회장과 은행장이 자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그룹 부사장이었던 이 행장이 선임된 것은 이례적인 셈이다.
남은 것은 이 행장이 자신의 경영 능력을 얼마 만큼 입증할 수 있느냐다.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 등 빅테크와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과 함께 글로벌 시장 확대도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 최초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 출시
이 행장은 금융 디지털 플랫폼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핀테크, 인터넷전문은행 등과의 차별화를 위한 차원에서다. 이를 위해 비금융 플랫폼과 제휴, 모바일 이용자 수 확대 작업에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엔 금융권 최초로 공급망 관리와 금융 서비스가 연계된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 ‘원비즈플라자’를 출시했다. 원비즈플라자는 구매 솔루션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별도의 비용 없이도 구입 업무를 수행하고 협력사와 실시간을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 행장은 취임 직후부터 고객 중심의 ‘넘버원(No.1) 금융플랫폼 기업’을 목표로 디지털 전환을 통한 플랫폼 경쟁력 제고를 강조해왔다. 원비즈플라자는 금융권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 구축의 일환으로 이 행장이 취임 이후 추진한 디지털 혁신 첫 사례로 꼽힌다.
이 행장이 꿈꾸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통합 경영을 제한한 금융지주회사법을 우회해 디지털 기술로 유니버설 뱅크를 가능하게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 예금을 받아 대출을 내주는 상업은행과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인수·모집하는 투자은행을 겸영하는 종합은행으로 유럽식 금융형태를 말한다.
우리은행은 이 행장의 주도 아래 종합 금융플랫폼 구축을 위한 여러 작업을 거쳤다. 지난해 4월엔 부동산플랫폼인 ‘우리원더랜드’를 출시해 아파트 단지 정보와 주변 편의 시설 정보 외에 주택도시기금 특화서비스, 부동산 컨시어지서비스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현장 경영 본격화
이 행장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본격적인 해외 행보에 나섰다. 그동안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영업점만 방문했던 이 행장은 지난해 8월 4박5일 일정으로 캄보디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 순방길에 올랐다.
우리은행은 최근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영업력을 확장하고 있다. 베트남 우리은행은 지난 8월 말 호치민에 빈홈 센트럴파크 출장소를 개점해 총 17개의 베트남 전역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이어 하노이 지역에는 참빛타워 출장소를 열고 신규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남아 사업 성장세도 가파르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지난 2019년부터 작년 5월까지 집계한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법인의 연평균 성장률은 30%로 나타났다. 각 나라별로 보면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각각 41%, 인도네시아가 19%의 성장세를 보였다.
우리은행은 국내 최초로 해외 상장은행 인수·합병에 성공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이 지난 1992년 설립한 인도네시아 법인은 당시 한국계 지상사 위주 기업금융 수익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현지 리테일 은행 소다라를 인수해 우리소다라은행을 출범했다.
지난 2017년엔 베트남우리은행 법인을 출범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동남아 지역 투자 중 베트남은 439억 달러로 1위 국가다. 베트남우리은행은 한국계 지상사와 현지 기업 및 리테일 등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수립했다. 신규 수익원 발굴을 위해 파생거래 및 자산수탁 서비스 등 사업도 강화하는 중이다.
이 행장은 임기 동안 글로벌 현장 경영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차별화 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핵심 사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 시장의 경우 아직 금융 산업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이 행장의 추가 사업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