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르네상스] ②'연구만 56년' 인도네시아 원전 본격 '기지개'

'독일 기술 기반'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운영
토르콘, 인니서 TMSR 2034년께 상용화 목표
규정·재정·인력 문제…상용화까지 과제 남아

 

'원전은 기후변화의 대안인가?' 그 대답은 지난 2001년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나왔다. 결론은 '대안이 될 수 없다'였다. 23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미국과 영국, 한국 등 주요 22개국은 지난해 총회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확대하자고 합의했다. 퇴물 취급받던 원전이 탄소중립의 수단으로 부상한 오늘날, 한국은 그 중심에 있다. 한국은 지난 1978년 고리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원전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원전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더구루는 한국이 주목하는 원전 도입국을 비롯해 주요국의 정부·에너지 기관·기업 등을 만나 △각국 원전 정책 △민·관 파트너십 △미래 원전 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한국 원전 산업의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구루 자카르타(인도네시아)=오소영 기자]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는 원전 연구 역사가 50년이 넘은 국가다. 우리나라 최초 국책 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보다 한 해 빠른 1958년 원자력에너지기구를 설치했다. 속도는 더디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첫 원전 상용화의 토대를 닦고 있는 곳은 인도네시아 최대 연구 기관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BRIN)'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 차로 약 한 시간을 달리면 BRIN 세르퐁 캠퍼스가 나타난다. BRIN은 인도네시아과기원(LIPI)과 인도네시아기술평가응용원(BPPT), 인도네시아항공우주연구원(LAPAN) 등 각 부처에 흩어진 연구 기관을 합쳐 지난 2021년 탄생했다. 약 1만4000여 명에 달하는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원전은 BRIN이 중점을 두는 연구 분야 중 하나다. 독일 인터아톰(Interatom)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300㎿급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RSG-GAS(Reaktor Serba Guna G.A. Siwabessy)'도 BRIN의 세르퐁 캠퍼스에 있다. 

 

◇ 연구용 원자로로 기술 '담금질'

 

 

RSG-GAS를 방문하기 위한 절차는 까다롭다. 지난 8월28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사전 허가에 이어 현장에서 두 차례 추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소지품을 빼고 방사선 노출 측정 기기를 넣은 흰 가운을 걸친 후 마지막 제어실의 승인까지 받고 나서야 견고한 회색 철문이 열렸다.

 

원자로 홀 내부로 들어가니 냉각수인 물이 약 13m까지 채워진 거대한 수조가 보였다. 수조 내부에는 8개 핵연료봉을 포함하는 원자로 본체가 담겨있고 원자로와 연결된 모니터에 온도와 압력, 습도 등이 표시됐다. 순다리 레트노 아시(Sundari Retno Asih) RSG-GAS 안전요원은 "실제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실험용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며 "5일 동안 24시간 가동하고 2~3일 쉰다"고 설명했다. 


연구용 원자로에서 생성된 방사성 물질은 방사선 차폐 시설인 '핫셀'을 거쳐 치료·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로 만들어진다. 총 3개의 핫셀에서 로봇 팔을 이용해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고 캡슐 형태로 방서성 동위원소를 제조한다.


인도네시아는 연구용 원자로를 통해 핵연료와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고온가스로(HTGR) 형태의 첫 소형모듈원자로(SMR) 'RDE(Reaktor Daya Eksperimental)'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원전 기술을 차근차근 확보해 궁극적으로는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다.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는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자 원전 9GW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2032년께 1호기를 운영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전력공사(PLN)의 서로소 이난다(Suroso Isnandar) 리스크 관리 담당 디렉터는 "2040년까지 64GW가 필요한데 2.4GW를 원전으로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소형 원전을 동시에 개발하려 한다"며 "수마트라와 칼리만탄 등 동부에 대형, 술라웨시와 파푸아 등 서부에 소형 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 토르콘, 이르면 2034년 차세대 원전 가동

 

 

인도네시아 원전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여러 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했다. 미국 토르콘의 손자회사인 토르콘 파워 인도네시아(이하 토르콘 파워)는 원전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다. 이 회사는 2021년 설립된 후 500㎿급 소형 원전 'TMSR'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TMSR은 물 대신 용융염을 냉각재로 활용하는 용융염 원전이다. 원전 구조물이 조립된 후 바지선에 실려 수상에 설치된다. 수명은 약 60~80년으로 지진이 잦은 인도네시아의 특성을 반영해 안전성이 강화됐다. 타고르 말람 셈비링(Tagor Malam Sembiring) 트로콘파워 원전 안전 총괄은 "10m는 잠기고 23m 정도 떠있있는데 23m의 여유를 둔 이유는 쓰나미가 와도 견디기 위함"이라며 "(일본) 후쿠시마 사고 당시 쓰나미 높이가 15m였다"고 설명했다.

 

토르콘 파워는 방카블리퉁 제도에 TMSR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28년 3분기께 건설 허가를 받아 데모플랜트를 짓고 2030년 4분기까지 운영 승인도 획득해 가동할 계획이다. 밥 S.에펜디(Bob S. Effendi) 토르콘 파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데모플랜트 가동 후 방카블리퉁 제도에 3.5GW 규모로 총 7기를 설치하고 2034~2035년까지 상업운전을 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인도네시아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수원은 작년 말 PLN의 발전 자회사인 누산타라 파워(PLN NP)와 인도네시아에 혁신형 SMR(i-SMR) 도입·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난다 디렉터는 신고리 원전과 원자력연구원 방문 경험을 회고하며 "한국의 원전은 품질이 우수하고 안정적이다"라며 호평했다. 한수원과의 i-SMR 협력 현황에 대해서는 "진행 중"이라며 "인력 훈련과 공동 연구 등에 대한 협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 아시아, 잠재력은 '최고'…과제는 '산더미'


친(親)원전을 지향하는 건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다. 필리핀은 2032년까지 최소 1200㎿급 원전을 운영하고 2050년까지 4800㎿로 확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바탄 원전 재개를 준비 중이다. 카자흐스탄도 울켄 지역에 1000~1400㎿ 용량의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모두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한수원과 2008년부터 15년 이상 파트너십을 지속하면서 바탄 원전 재가동에 관한 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필리핀 에너지부는 "타당성조사는 바탄 원전 부활의 중요한 단계"라며 "내년 1월부터 2단계 타당성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아시아에 건설 중인 원전은 약 45기, 계획된 원전은 50~60기라고 분석했다. 성장잠재력은 높지만 상용화까진 갈 길이 멀다.

 

원전 업계 관계자들은 규제 마련과 예산 확보, 반(反)원전 여론 해소 등을 한입 모아 말했다. 지나 리나 수나료(Geni Rina Sunaryo) BRIN 선임연구원은 "예산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도 제정해야 한다"고 "예산 확보와 환경 등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네시아에는 석탄화력 분야에 많은 회사들이 있고 그들은 원전을 원치 않아 한다"며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카를로 아르실라(Carlo Arcilla) 필리핀원자력연구소(PNRI) 국장은 "첫째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강력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립해야 하고, 둘째 자금을 조달해야 하며, 셋째 충분한 인적 자원을 개발해야 하고, 넷째 정부의 지속적인 정치적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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