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기후변화의 대안인가?' 그 대답은 지난 2001년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나왔다. 결론은 '대안이 될 수 없다'였다. 23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미국과 영국, 한국 등 주요 22개국은 지난해 총회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확대하자고 합의했다. 퇴물 취급받던 원전이 탄소중립의 수단으로 부상한 오늘날, 한국은 그 중심에 있다. 한국은 지난 1978년 고리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원전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원전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더구루는 한국이 주목하는 원전 도입국을 비롯해 주요국의 정부·에너지 기관·기업 등을 만나 △각국 원전 정책 △민·관 파트너십 △미래 원전 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한국 원전 산업의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구루 아이다호·뉴저지주(미국)=정예린 기자] 미국은 73년 전 세계 최초로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원자력 연구를 시작한 배경은 1940년대 초, 제2차 세계대전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후 민간 부문으로 확장하며 전기 에너지원으로서 세계 원자력 발전 상용화의 기틀을 닦았다. 지금까지 명실상부 글로벌 원전 산업을 견인하는 국가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다.
1979년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이후 주춤했던 미 원전 산업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섰던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아 보글 3·4호기 건설 정부 자금 지원, 소형모듈원자로(SMR) 부지 선정, 국가원자로혁신센터(NRIC) 설립 등이 모두 트럼프 재임 시절 일어났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원자력 부흥 기조가 이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하며 또다시 정권이 교체됐지만 '원전 부흥’을 위한 정책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원전 확대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민관 합동으로 다양한 원자력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 에너지부(DOE) 산하에 있는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는 국립 연구소 중 특히 원자력 에너지에 특화돼 있다. 이밖에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LLNL),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ORNL), MIT의 플라즈마 과학 및 핵융합 센터(PSFC) 등이 △원자력 에너지 △핵융합 △핵안전성 △핵폐기물 관리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원전 기업들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원전 정책 변화 등을 예의주시하며 기술 개발을 진행, 정부의 움직임에 적극 발맞추고 있다.
아이다호국립연구소 핵 과학·기술 부연구실장(Associate Laboratory Director)인 제스 게힌(Jess Gehin) 박사는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생산을 세 배로 늘리는 목표를 설정했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원자력 원자로의 지속적인 운영 지원 △고급 원자력 원자로 배치 지원 △고급 원자력 연료 주기 개발 △미국의 원자력 기술 리더십 유지 등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美, 세계 최대 원전 발전국…SMR 상용화까지 '속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현재 28개 주에 54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상업적으로 운영 중이다. 각 원자력 발전소에는 총 94개의 원자로가 설치돼 9만6952메가와트(MW) 발전 용량을 갖추고 있다.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가 발생한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새롭게 건설된 원전인 조지아 파워의 보글(Vogtle) 3호기가 작년 7월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9개월여 만인 올 4월 보글 4호기도 가동에 돌입했다. 보글 3·4호기는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 설계 AP1000을 채택하고 있다.
신규 원전 뿐만 아니라 폐원전 재가동을 위한 준비에도 착수했다. 펜실베이니아 쓰리마일 아일랜드의 경우 이를 소유한 미 최대 원전 운영사 '컨스텔레이션에너지'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력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고 있다. 홀텍은 팰리세이즈 원전을 미시간주 주정부의 요청으로 재가동키로 했다. 해체 절차(decommissioning)를 밟고 있던 원전이 다시 운영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미국 내 첫 SMR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홀텍은 자사가 개발한 SMR-160을 활용해 ‘세계 1호 SMR 상용’ 타이틀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테라파워는 지난 6월 미국 와이오밍주에 소듐냉각고속로(SFR) '나트륨(Natrium)' 착공식을 개최했다. 다음달인 7월 카이로스파워는 오크리지에 시험 원자로 '헤르메스(Hermes)' 건설에 돌입했다. 테라파워와 카이로스파워는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긴밀히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서지 골린(Serge Gorlin) 세계원자력협회(WNA) 사업개발책임자는 "미국이 SMR 채택에 적극적인 이유는 에너지 수요 증가와 기후 변화 대응 목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된 비용과 건설 기간 문제를 해결하려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SMR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망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며 "SMR은 기존의 전력망에 통합하기 용이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 필요한 열과 전기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SMR 상용화를 위해서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원자로 설계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유일하게 뉴스케일파워만이 2020년 NPM(NuScale Power Module)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첫 SMR을 구축하려 했으나 작년 11월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프로젝트를 철회했다.
◇ 정부와 기업도 올인…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홀텍
원자력 발전은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이 중요한 산업군으로 꼽힌다.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필연적으로 정치외교적 이슈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 원자력 산업을 살피기 위해 본지는 미국 유일의 원전 전문 국립연구소인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원전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홀텍을 찾았다.
1949년 설립된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미국 원자력 에너지 상용화의 근간이 된 시설이다. 1951년 처음으로 원자력을 활용해 전구 4개를 켜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이다호국립연구소 내 지금은 폐쇄된 미국 첫 상용 원자력 발전소 'EBR(Experimental Breeder Reactor)-I'에서 일어났다.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현재까지 4개의 원자로를 가동하며 다양한 시설들을 통해 차세대 원전 연료와 냉각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성을 확보하고 핵 연료 성능을 향상해 미 '원전 굴기'를 재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조 캠벨 아이다호국립연구소 ATR(Advanced Test Reactor)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미국은 오랫 동안 새로운 원자려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많은 기술을 잃었다"며 "하지만 보글 3,4호기가 가동되면서 대형 원자력 발전소를 짓기 위한 기술력을 되찾기 시작했고, 이 기세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홀텍은 1980년 원전 산업에 진출했다. 당초 핵 연료 저장 캐스트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다 1990년대 원자력 발전소 설계와 건설 분야로 확장했다. 이후 SMR과 핵 폐기물 관리까지 아우르며 원전 설계부터 건설까지 책임지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팰리세이즈 원전 재가동까지 책임지며 명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릭 스프링먼 홀텍 글로벌 클린 에너지 기회 부문 사장 겸 국제 프로젝트 부문 수석 부사장은 "처음 핵연료 시장에 진출했을 당시 웨스팅하우스, GE 등 빅 플레이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모두들 우리에게 기술도 라이선스도 없으면서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겠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었다"며 "지금은 습식 저장(Wet Storage)은 미국 100%, 글로벌 40%, 건식 저장(Dry stroage) 분야에서는 미국 65~70%, 글로벌 30%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스프링먼 사장은 "홀텍은 다른 회사보다 기술 측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홀텍은 이미 수백만 달러를 투자를 했고, 이게 에너지 시장을 크게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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