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윤진웅 기자] 전기 픽업트럭이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전동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ESS(에너지 저장 장치)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전동화가 단순한 ‘내연기관 대체’에서 ‘에너지 저장과 공급’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전기 픽업트럭의 새로운 역할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
3일 코트라 등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 픽업트럭을 활용한 V2L(Vehicle-to-Load) 및 V2G(Vehicle-to-Grid) 기술을 도입하며 전력 저장 및 공급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일반 전기차보다 더 큰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점에서 에너지 저장 및 공급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전기 픽업트럭 ESS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노후화된 전력망과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으로 인해 전력 수급 안정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실제 포드 F-150 라이트닝, 리비안 R1T, 테슬라 사이버트럭 등 미국 브랜드 픽업트럭 모델은 V2L 기능을 통해 차량 배터리를 외부 전력 공급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V2G 기술을 통해 전기 픽업트럭이 전력망과 연결되면, 에너지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공급하는 분산형 전력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는 전력망에 전력을 공급하고, 전기 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는 충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 구축 논의가 진행 중이며, 전기 픽업트럭이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 픽업트럭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연계 기능을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사우선 컴퍼니(Southern Company)는 포드와 협력해 F-150 라이트닝 200대를 전력망과 연계하는 6개월간의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우선 컴퍼니는 EV 충전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전력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요금 체계 및 수요 반응(Demand Response)을 활용해 최적의 전력 운영 방안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기 픽업트럭의 에너지 저장 및 공급 기능을 실증하고, 전력망과의 연계를 통한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각오이다.
다만 전기 픽업트럭이 ESS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충전 인프라 부족은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전력망과의 연결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대용량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면 ESS로서의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경제성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전기 픽업트럭의 높은 가격과 보조금 축소 가능성은 소비자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정책적 불확실성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및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등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관련 인센티브가 줄어든다면, 기업들의 전기 픽업트럭 전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