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LG전자가 미국의 베트남 대상 고율 관세 조치가 계속될 경우 현지 투자를 전면 중단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관세 인상으로 수출 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해지며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전략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14일 하이퐁시에 따르면 하이퐁경제구역관리위원회는 레 쭝 끼엔(Le Trung Kien) 위원장 주재 하에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기업 간담회를 열고 입주 기업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LG전자와 대만 페가트론 등 주요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들과 세관·세무당국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완기 LG전자 하이퐁법인 경영관리 담당은 "올해와 내년 짱주에(Tràng Duệ) 산업단지 내 공장 확대를 계획 중이었다"며 "하지만 관세 문제가 장기화된다면 미국 관세 문제로 투자 결정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다행히 베트남 정부가 미국과의 초기 협상에 착수해 관세 적용이 90일 유예된 만큼 이 시간을 활용해 협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며 "또 이번 간담회를 통해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지역 당국의 지원 의지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김 담당이 언급한 투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이퐁 내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R&D) 강화 등이 포함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LG전자는 하이퐁 P3 공장 증설과 P4 공장 신축을 진행 중이다. 새롭게 짓는 P4 공장은 오븐 생산라인으로, LG전자가 베트남에서 오븐을 현지 생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공사를 시작했으며 연내 완공 후 가동 예정이다.
하이퐁경제구역관리위원회는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로 인해 하이퐁과 베트남 전체의 투자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수출 시장 다변화를 위해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중심으로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미국 관세로 피해를 입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미국과 세율 조정 협상을 벌이고, 소득세 인하 등 세제 인센티브를 추진할 계획이다.
위원회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하이퐁시 수출기업 130곳 중 64곳이 미국으로의 직·간접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베트남 대상 고율 관세에 따른 피해 규모는 약 28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시장에 대한 간접 수출은 61억 달러 규모로, 이는 하이퐁 전체 수출의 약 80%를 차지한다.
레 위원장은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이미 다수 기업이 미국 수출 계약을 취소하거나 연기했고, 수출 비용은 오르고 수익은 줄어들며 생산 축소와 투자 계획 철회로 이어지고 있다"며 "기업들도 원산지 투명성을 높이고, 내수 공급망 강화, 디지털 전환, 품질 기반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등 장기적으로 수출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상호관세'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26%), 베트남(46%), 유럽연합(EU·20%), 일본(24%) 등 주요 무역 상대국에는 더 높은 관세를 적용했다. 국가별 고율 관세는 당초 지난 9일부터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은 기본 관세율 10%만 적용되며,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국가별 고율 관세가 발효된다.
한편 LG그룹은 하이퐁시 최대 외국인 투자자다. LG전자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 LG CNS, LG화학, LG이노텍 등이 하이퐁시에 거점을 두고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하이퐁시 전체 수출액의 43%를 책임지고 있다. 누적 투자액은 82억4000만 달러에 이른다.
LG전자는 지난 2014년 하이퐁시에 'LG하이퐁 캠퍼스'를 설립하고 TV, 생활가전 등 대표 제품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글로벌 세트·부품 생산액의 15%를 하이퐁법인이 차지했다. 연간 생산 규모는 120억 달러에 달한다. 증설이 지속되면서 향후 생산량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