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도담 기자] 자동차업계의 탈 내연기관차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생산 규모가 작은 고급 브랜드는 10년 내 완전 전동화를 추진하고 GM,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같은 메이저 브랜드 역시 2030년 이후엔 상당 부분 전동화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전 자동차업계가 '내연기관의 전동화'라는 큰 방향성에 동참한 모양새다.
다만, 유럽과 중국 등 탄소중립 속도라 빠른 국가를 제외한 다른 시장에선 2040년 이후에도 여전히 내연기관차 수요가 예상되는 만큼 업체별로 향후 예측과 그에 따른 속도에선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볼보·재규어·캐딜락 등 "10년 내 전기차 브랜드화"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중소규모 비독일 고급 자동차 브랜드다. 생산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변화가 쉽고 전동화 과정에서 독일 고급차 브랜드의 '헤게모니'를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미국 테슬라는 실제 모델S 등 고급 모델을 앞세워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 같은 전통의 브랜드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인도 타타그룹 산하 영국 자동차 회사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2월 브랜드 전동화 내용을 담은 '리이매진'을 발표했다. 재규어 브랜드는 2025년부터 순수 전기차만 판매하고 SUV 브랜드인 랜드로버 역시 2030년까진 전기차 판매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미국 제네럴모터스(GM) 산하 고급차 브랜드 캐딜락 역시 2025년부터 순수 전기차만 판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독일 폭스바겐 산하 영국 고급차 회사 벤틀리 역시 2026년부턴 전 판매모델을 전기차 혹은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PHEV)로 바꾸고 2030년부턴 PHEV도 제외키로 했다.
중국 지리차 소유 스웨덴 고급차 회사 볼보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 볼보는 지난 2일 2030년까지 전 모델을 완전 전동화하기로 했다. 당장 2025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절반으로, 나머지 50%도 하이브리드 모델로 바꿀 계획이다.
◇GM은 '올인'…포드·폭스바겐도 '속도'
가장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한 곳은 북미 최대 자동차 회사이자 '글로벌 빅3'인 GM이다. GM은 올 1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5년 내 270억달러(약 30조원)을 투입해 30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2025년까지 연 100만대에 이르는 전기차를 판매한다는 로드맵도 발표했다.
GM의 주 무대이자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유럽,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내연기관차 판매중단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에 발맞추는 것은 물론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석이다.
미국 내 GM 경쟁자인 포드는 이보다 '온건'한 모습이다. 전기차만 판매키로 한 시점은 2030년으로 5년 빠르지만 전동화 지역을 유럽으로 한정했다. 완전 전동화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글로벌 빅3'이자 유럽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그룹도 마찬가지다. 2029년까지 전 라인업에 걸쳐 75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그 동안 260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한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웠으나 완전한 '탈 내연기관' 시점을 제시하진 않았다.
다임러그룹(메르세데스-벤츠)과 BMW 등 독일 고급차 회사도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는 세웠으나 100% 전동화 계획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2039년을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점으로 언급한 적 있으나 다임러그룹 차원의 계획은 아니다.
또 다른 주요 자동차 회사인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 연합, 그리고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푸조시트로엥(PSA)의 합병으로 출범한 스텔란티스 역시 아직 탈 내연기관에 대한 구체적 일정은 잡지 않았다.
◇전동화는 필연이지만…신중론도
전기차가 갖고 있는 한계를 고려한 신중함으로 풀이된다. 전기차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주행거리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친환경성을 빼면 내연기관차의 성능과 편의를 넘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국가별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속도도 제각각이다. 특히 트럭·버스 등 대형 모델이나 고성능 모델에선 전동화에 아직 근본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폭스바겐그룹 산하) 등 역사가 100년이 넘는 고급차 회사의 경우 내연기관차 부문에서 오랜 기간 쌓아 온 비교우위를 쉽게 포기하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전동화 투자에는 공격적이나 목표 수립 면에선 신중한 현대차그룹의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그룹 대표 브랜드인 현대차는 올해를 전기차 도약 원년으로 선포했고 지난달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처음 도입한 '아이오닉5'를 선보였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 비중은 지난해 5.6%에서 2030년 19%, 2035년 46%, 2040년 78%로 점진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탈 내연기관 시점도 상대적으로 늦은 2040년, 그것도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을 전제로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의 주력 시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신흥시장 대부분은 아직 전기(수소)차가 상용화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수요와 충전 인프라는 지역에 따라 다른 만큼 2030년 시장을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미래 전기차 개발 자금 마련을 위해서라도 여전히 내연기관차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들 역시 내연기관차의 전동화 전환 자체는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CEO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강화로 내연기관차 종식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각국 정부의 환경 규제는 날로 강화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유럽연합(EU) 차원의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 기조 아래 탈 내연기관화를 서두르고 있다. 노르웨이는 2025년, 프랑스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중단한다. EU에서 탈퇴한 영국 역시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중단하고, 2035년에는 하이브리드차까지 판매를 금지할 방침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판매시장인 중국 역시 지난해 말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공식 선언했다. 미국은 기존 화석연료 산업을 중시했던 이전 트럼프 정부 기조 아래 탈 내연기관 속도가 더뎠으나 올 들어 전기차 보급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며 관련 정책이 180도 뒤바뀔 전망이다. 이와 별개로 캘리포니아 주(州) 등 미국 내 핵심 주 정부는 이미 2035년 탈 내연기관을 선언했다. 우리나라 역시 탈 내연기관 선언 시점에 대해 논의가 한창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