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필리핀 바탄 원전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착수한다. 내년 초 필리핀 에너지부 대표단을 한국으로 초대해 원전 역량을 홍보하고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건설 전 사전 작업부터 참여해 수주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한다.
20일 필리핀 국영 통신사인 'PNA(Philippine News Agency)'에 따르면 샤론 가린 에너지부 차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필리핀 대표단이 내달 말 한수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다"며 "(바탄) 원전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 협약에 서명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바탄 원전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필리핀 루손섬 남부에 620㎿ 규모로 지으려고 했던 발전소다. 1976년 건설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미국에서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터지며 공사가 중단됐다. 1981년 1월 공사가 재개돼 1984년 완공 직전까지 갔지만 다시 멈췄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의 축출로 바탄 원전은 끝내 한 차례도 가동되지 못했다.
이후 관광지로 전락했으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건설에 재시동이 걸렸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전력 수급을 안정화하고자 원전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유력 사업자 중 하나로 원전 수주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8년 알폰소 쿠시 장관을 비롯해 필리핀 에너지부 대표단을 초청해 바탄 원전과 동일한 노형인 고리 2호기를 소개했다. 이듬해 원전 건설 재개를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출했다. 작년 말에는 천영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이 마크 오 쿠후앙코 필리핀 원자력에너지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서울에서 만나 원전 협력 의지를 다졌다.
이번 타당성 조사도 한수원이 제안했다. 한수원은 조사 비용을 전부 지불하고, 필리핀의 원전 전문가를 기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막대한 지원을 앞세워 강력한 경쟁 상대인 러시아 로사톰을 물리치고 수주를 따낼 방침이다.
하지만 승리를 단언하긴 이르다. 가린 차관은 내달 체결할 MOU가 사업자 선정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 기업에 사업을 맡길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