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방산·항공우주 회사가 왜 배터리를 하는지 생각하실 수 있지만 벌써 8년이 지났다. 2016년 장보고3 배치2 잠수함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을 개발했고, 민수 선박용을 개발해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도심항공용(UAM)도 개발한 이력이 있다. 잠수함과 선박, UAM 모두 화재가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완벽히 예방하고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게 액침냉각 기술이다"
손승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에너지시스템연구센터장은 10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본사에서 열린 '액침냉각 ESS 기술' 설명회에서 열변을 토했다. 계획한 시간을 넘겨 발표를 진행하며 기술 설명에 열을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액침냉각'에 진심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작년 10월 윤활유 전문 기업 SK엔무브와 '선박용 액침형 ESS 사업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약 1년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해양수산부 산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의 전기추진선박에 공급해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액침냉각은 리튬이온배터리 모듈에 냉각 플루이드(Thermal Fluids)를 채워 화재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다. ESS나 데이터센터 등에 적용하면 공랭식(공기로 냉방)이나 수랭식(냉각수로 냉방)보다 전력 효율성이 높다. 이날 발표에 나선 서상혁 SK엔무브 e-Fluids B2B 사업실장은 "선풍기를 돌리거나 샤워를 하는 것보다 냉탕에 몸을 담그는 게 가장 시원하다"고 비유를 들었다.
액침냉각은 화재 위험과 장비 손상도 줄인다. 배관 같은 부가 장치가 필요 없어 간편하며 경제성도 높아진다. 최근 엔비디아가 열 관리를 위해 차세대 인공지능(AI) 칩부터 액침냉각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해 이목을 모은 바 있다.
액침냉각을 ESS에 적용하면 배터리 셀 하나가 발화돼도 내부에서 차단되고 다른 셀로 번지지 않아 화재 예방이 가능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실시한 시험에서는 6개 주변 셀에 연속적으로 불이 붙은 후 곧바로 진압됐고, 중앙 셀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냉각 플루이드로 내부를 완전히 채운 방식은 외부로부터 먼지와 염분 등의 유입도 원천 차단해 내부 손상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거한다. 기존 방식보다 우수한 안전성을 입증해 주요 모델(품명: SEAL)이 글로벌 인증 기관인 노르셰베리타스(DNV), 한국선급(KR)으로부터 인증을 획득했다.
손 센터장은 "해양 선박용 ESS는 안전성이 필수 조건"이라며 "20년 이상의 연구개발(R&D)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ESS 설계 능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제조 역량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신감은 SK엔무브와의 시너지에서 비롯된다. SK엔무브는 고품질 윤활기유를 생산한 경험을 토대로 액침냉각 기술의 핵심소재인 냉각 플루이드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플루이드는 액체와 기체의 중간 성질을 지닌 물질로 모듈 내부에서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고,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장시간 사용 중에도 물성이 변하지 않으며, 우수한 냉각 성능을 유지하고, 화재 전이를 막을 수 있다. 서 실장은 "SK엔무브가 자체 개발한 첨가제까지 활용하면 화재 진압에 걸리는 시간을 4.6초에서 0.4초까지 줄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SK엔무브는 냉각 플루이드 시장에 국내 최초로 진출해 2022년부터 육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화재에 취약한 데이터센터나 충전기, 전기차 등에 적용할 예정이다. SK텔레콤, SK시그넷과 협업해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SK엔무브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선박 ESS 시장을 공략한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전 세계 선박용 ESS 시장은 2021년 약 21억 달러(약 3조원)에서 2030년 약 76억 달러(약 10조원)로 연평균 15.5%의 성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