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진유진 기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연합(EU)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계약을 올해 말 이후로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번 결정으로 유럽 에너지 시장이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최근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원산지의 가스 수송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시미할 총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스 수송 협정은 오는 2025년 1월 1일에 종료되며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며 "EU 집행위원회가 공식 요청할 경우 러시아산이 아닌 가스 수송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Gazprom)과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 기업 나프토가즈(Naftogaz)는 지난 2019년 5개년 수송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해당 계약에 따라 지난 2020년에는 650억 입방미터(㎥), 2021~2024년에는 매년 400억㎥의 가스를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EU로 운송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속에서 올해 12월 31일 만료되는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가스 수송망은 슬로바키아와 몰도바,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 인근 국가들과 연결돼 있으며,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주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이번 계약 종료로 인해 러시아 가스에 의존적인 EU 일부 회원국들은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특히 슬로바키아는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로, 현재 내년 가스 공급을 위한 치열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피초 총리는 "슬로바키아는 러시아 가스를 더 비싼 대안으로 대체하라는 서방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정학적 이유로 가스 비용을 필요 이상으로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국영 에너지 기업 SPP를 포함한 유럽 주요 에너지 사업자들은 최근 "러시아산 가스 경유가 유럽 가스 소비자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도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선언문에 서명했다. 해당 선언문은 유럽위원회에 제출돼 에너지·경제 안보에 대한 위협을 알릴 예정이다.
EU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 이후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선언, 미국산 고가의 액화천연가스(LNG)가 러시아산 저가 가스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EU의 가스 소비 중 약 5%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결정은 유럽 에너지 시장 변화는 물론 각국의 대응 전략을 재점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