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삼성SDI가 헝가리에 세 번째 배터리 공장을 짓지 않기로 결정한 배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초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던 '3공장'이 실제로는 부지 확보부터 설계 검토까지 이미 상당한 준비가 이뤄졌던 정황이 현지 문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5일 헝가리 매체 텔렉스(Telex)에 따르면 삼성SDI가 과거 괴드시에 '3공장(Factory 3)'이라는 명칭의 신규 배터리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하며 관련 개발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당시 삼성SDI가 외부에 "신규 공장 계획은 없다"고 밝혔던 기존 입장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해당 문서에는 공장 위치와 △약 3000명 인력 수용 규모 △2000대 이상의 차량 접근을 위한 도로 연결 계획 △인근 부지 매입 내역 등이 상세히 포함돼 있다. 부지는 기존 1·2공장과 인접해 있으며, 삼성SDI가 괴드시에 문서를 제출할 당시 부지 매입도 완료된 상태였다. 이는 3공장 건설을 위한 초기 단계 투자가 실제로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삼성SDI는 2017년 헝가리 괴드에 1공장을 설립한 데 이어 2022년 2공장을 완공하며 유럽 내 핵심 생산 거점을 구축해왔다. 3공장 설립 추진은 이 연장선상에서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계획이었다. 당초 3공장은 BMW와의 합작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3공장 건설이 중단되거나 철회된 배경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BMW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BMW는 데브레첸 공장을 친환경차 생산 핵심 거점으로 삼아 20억 유로를 투자해 전기차와 배터리 조립 시설을 구축했다. 하지만 BMW가 중국 배터리 업체 EVE에너지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EVE에너지가 BMW 공장이 위치한 데브레첸에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고, 이로 인해 BMW 전용 배터리 물량이 줄어들면서 삼성SDI의 대규모 신규 투자 실익이 감소하며 신공장 설립 계획이 무산됐다는 분석이다. <본보 2023년 5월 14일 참고 EVE에너지, 헝가리 진격… 원통형 배터리 BMW 공급>
삼성SDI는 3공장 신규 건설을 보류하고, 대신 기존 1·2공장 설비 개조와 증설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초기 단계까지 진척됐던 3공장 신설 계획을 철회하고 당장 납품이 가능한 기존 시설 고도화에 투자 효율성과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둔 것이다. 단기적 수요 확보가 불확실한 신규 공장보다 기존 고객과 제품에 집중해 자원을 배분하는 전략으로, 이를 통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5월 삼성SDI는 1조6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실탄을 확보했다. 이중 약 3236억원을 헝가리 공장 고도화에 투입할 계획이다. 1공장은 기존 와인딩 방식에서 에너지 밀도가 높은 스태킹 방식으로 공정을 전환하며, 2공장은 생산 능력 증설에 나선다.
삼성SDI는 기존 괴드 공장을 활용해 BMW와 폭스바겐 등에 배터리를 납품해왔으며, 내년부터는 현대차·기아의 유럽형 전기차 배터리도 헝가리 공장에서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괴드 공장은 연간 40GWh 이상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설비 개조와 증설이 완료되면 공급 규모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