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SK이노베이션 E&S와 대우건설 등이 약 3조원 규모의 베트남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사업 입찰에 끝내 참여하지 않았다. 수개월간 현지 정부와 접촉하며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국내 기업들이 빠지면서, 동남아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한 글로벌 전략의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탄호아성 응이손 경제구역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응이손 LNG 화력발전소 사업 입찰이 지난 17일 마감됐으나, 어떠한 투자자도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최종 유찰됐다. SK이노베이션 E&S와 대우건설 등 국내 기업들이 포함된 국내외 복수 컨소시엄이 사전 심사를 통과했으나 본입찰에는 모두 불참했다.
응이손 LNG 발전소 사업은 지난 2023년 입찰 공고 후 법령 개정과 토지법 시행 여파로 수차례 조건이 변경되며 일정이 지연돼 왔다. 실제 입찰 보증금은 약 304억원에서 144억원 수준으로 절반 넘게 낮아졌고, 최소 자기자본 요건도 약 4300억원으로 조정됐다. 당국의 조건 완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입찰이 무산됐다.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주된 배경으로는 전력구매계약(PPA) 표준안의 부재와 가격 책정 기준의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LNG 발전 특성상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연료 가격 변동, 환율 리스크가 크지만,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수익보장 조건이 제시되지 않아 사업성 분석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베트남 현지에서는 구체적인 PPA 조건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금융조달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PPA는 발전사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계약이기 때문에 관련 조건이 불확실할 경우 투자자들이 재무 구조를 확정하지 못해 결국 사업 참여를 주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E&S는 이번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사업 자체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입찰 취소는 베트남 정부의 결정일 뿐이며, 사업 포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베트남 응에안성과 탄호아성을 잇따라 방문하며 발전사업 협의를 지속해온 만큼 입찰 조건 재조정 후 재진입을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유영욱 SK이노베이션 E&S 글로벌사업개발실장(부사장)이 이끈 대표단은 이달 초에도 응에안성 인민위원회를 방문해 풍 탄 빈 인민위원회 부위원장과 회동한 바 있다. 당시 유 부사장은 "뀐랍과 응이손 LNG 발전소 모두 검토 중이며, 중앙정부와의 협의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보 2025년 7월 3일 참고 SK, 베트남 응에안성 3개월 만에 재방문..LNG발전 협력 구체화되나>
업계에서는 SK가 정부와 전력구매 조건, 토지사용권 문제 등을 추가 협의한 뒤 새로운 방식의 사업참여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직접입찰 방식 대신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을 통한 수의계약 전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트남 정부령(115/2024/NĐ-CP)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지정방식의 민간투자자 선정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이손 발전소는 총 투자비 57조5240억 동(약 3조373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1500MW급 LNG 발전설비와 연간 120만 톤(t) 규모의 재기화 설비, 저장탱크, 항만 등 주요 인프라가 조성된다. 베트남 ‘전력계획 VIII’에 따라 2030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추진돼 왔다. 사전심사를 통과한 5개 후보에는 △SK이노베이션 E&S △한국전력공사·대우건설·영국건설투자공사 컨소시엄 △일본 제라(JERA)·베트남 소비코(SOVICO) 컨소시엄 △태국 '걸프에너지' △베트남 PV파워·T&T 컨소시엄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