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삼성과 LG, 월풀 등 글로벌 가전사들로 구성된 미국가전제조사협회(AHAM)가 콜로라도 주정부에 소송을 걸었다. 가스레인지에 경고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한 법안을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스레인지와 건강의 인과관계를 근거로 한 주정부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과거 가전 업체들이 전기레인지를 홍보하고자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을 부각한 사례들이 재조명되며 협회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일 미국 콜로라도 지방법원에 따르면 AHAM은 지난달 5일(현지시간) △질 헌세이커 라이언 콜로라도 공중보건환경부(CDPHE) 국장 △제프 로렌스(Jeff Lawrence) CDPHE 산하 환경 보건·지속가능성 부서장 △필 와이저(Phil Weiser) 콜로라도주 법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AHAM은 콜로라도 주법 'HB25-1161'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인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은 가스레인지 제조·판매사에 경고 스티커 부착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티커는 '가스레인지 사용이 실내 공기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문구를 포함하고 CDPHE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 또는 QR 코드가 담겨야 한다. QR 코드로 안내된 주정부 홈페이지는 가스레인지 사용이 천식과 심폐질환, 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콜로라도주는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커 부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최대 2만 달러(약 2770만 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AHAM은 콜로라도주의 규제가 부당하다고 봤다.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세계보건기구(WTO)와 미 회계감사원(GAO) 등 권위 있는 기관의 조사에서 가스레인지와 건강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으면 오히려 전기레인지를 이용할 때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도 있다고 반박했다. 소수의 왜곡된 주장만을 담아 '가스레인지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강제했다며 제조사의 '발언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HB25-1161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위헌을 선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그간 가전 회사들의 행보에 비춰볼 때 AHAM의 주장이 힘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독립 언론인 그리스트는 협회 회원사들이 AHAM과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전기레인지의 장점을 강조하며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지난 5월 영국 홈페이지에서 기존 가스 기기는 유해 오염 물질을 방출하고 이는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전기 제품으로 바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홈페이지에서 인덕션 쿡탑이 실내 공기 오염 우려를 없애고 지속가능하며 건강한 가정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했다. 보쉬도 인덕션 쿡탑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실내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렸다. 이러한 홍보 문구는 소송을 앞두고 일부 지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타이 바르디(Itai Vardi) 에너지 및 정책 연구소 연구원은 "그들(제조사)로부터 나온 진술은 이 소송의 매우 강력한 언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면밀히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서는 회원사와 협회의 이해관계가 늘 일치하지 않은 사실을 간과한 지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를 모두 판매하는 기업의 입장과 협회의 주장이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