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 부산=정예린 기자] "지난해 흑자 전환한 이래 올해와 내년 흑자 폭이 더욱 커지고, 향후 2~3년간 지속적으로 좋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기본 합의를 이루면서 상선과 더불어 방산 분야에서 추가 성장세가 기대된다."
지난달 31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만난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이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HJ중공업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체질을 바꾸고 있다. 88년 전통의 영도조선소는 오랜 경영난을 딛고 지난해 1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날 방문한 부산 영도 앞바다에 위치한 HJ중공업 조선소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크 안에는 해군 고속상륙정(LSF-II)이 선체를 드러냈고, 인근에서는 해군 독도함의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용접 불꽃이 튀는 현장 곳곳에서 '한진조선의 부활'을 실감케 하는 기운이 감돌았다.
◇ 고속상륙정·독도함 MRO… "속도가 곧 전력"
조선소 2도크에서는 내년 인도를 앞둔 해군 고속상륙정이 막바지 조립 단계에 들어섰다. HJ중공업이 독점 건조권을 가진 이 함정은 가스터빈을 추진기관으로 사용, 시속 60~70㎞까지 속도를 낸다. 수면 위를 떠오르듯 이동하며 병력 150명을 완전무장 상태로 수송할 수 있다.
권재관 생산본부장은 "속도가 곧 전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륙함 작전에서 속도는 핵심"이라며 "HJ중공업이 가진 설계·조립 기술은 국내 유일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영도조선소는 최근 대형 경비함을 해경에 인도했으며, 현재 3000톤(t)급 경비함 후속함의 시운전도 진행 중이다. HJ중공업은 국내에서 해경 함정 건조 실적이 가장 많은 조선소로, 국내 기업 중 방산 함정 비중이 높다는 게 HJ중공업 측 설명이다.
2도크 인근에서는 해군의 대형 수송함 독도함이 2007년 인도된 뒤 20여년 만에 영도조선소로 돌아와 장비 개조(MRO)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독도함은 상륙작전의 핵심 플랫폼으로, 노후 장비의 성능 개선과 최신 전투체계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HJ중공업은 독도함을 비롯해 해군·해경 함정의 정비와 개조를 꾸준히 수행하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군용 공기부양정·고속정·상륙함 전 주기를 다루는 조선소로 꼽힌다.
유 대표는 “영도조선소는 해군작전사령부와 인접해 있어 함정 MRO에는 최적 입지”라며 “정부의 부산 조선해양산업 육성 정책이 본격화하면, 지역 내 기자재업체·금융기관까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美 마스가 정책과 맞물린 MRO 기회
HJ중공업이 주목하는 것은 국내 함정 정비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조선 산업 재건을 목표로 추진 중인 ‘마스가’ 정책과 맞물리며, 북미 시장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마스가는 미국 내 노후 조선소를 현대화하고, 해군·해안경비대용 함정 정비 및 신조 물량을 민간 조선소로 분산시키는 구상이다. 한미 간 조선 협력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을 갖춘 한국 조선소에도 참여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HJ중공업은 올해 초 미 해군의 MRO 입찰 참여를 위해 필수 자격인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를 신청했다. 지난 9월 말 미 해군 실사단이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시설·공정·품질 관리 체계를 점검했으며, 연말께 승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제도 개편으로 지원함(전투용이 아닌 유조선·보급함 등)은 MSRA 없이도 일부 정비·개조 작업이 가능해져, HJ중공업은 이미 해당 부문 입찰에 참여한 상태다.
유 대표는 "MSRA 승인을 받으면 미 해군의 대형함정까지 입찰이 가능해진다"며 "현재 지원함 입찰은 이미 진행 중으로,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상선 수주도 확대… "한진 품질 되찾았다"
방산 강화와 함께 상선 부문도 빠르게 회복 중이다. HJ중공업 영도조선소에는 총 3개의 도크가 있다. 이 중 2곳은 상선, 1곳은 방산함정 전용으로 가동 중이다. 현장을 찾았을 때 도크는 모두 꽉 차 있었다. 3도크에서는 내년 초 진수를 목표로 5500TEU급 컨테이너선과 7900TEU급 8척이 동시 건조되고 있었다. 여기에 1만100TEU급 ‘HJ MAX’ 신형 설계까지 완료돼 유럽 선주들과 계약 협의가 진행 중이다.
HJ중공업은 독일·그리스 선주를 중심으로 상선 수주를 확대 중이다. 유 대표는 “한때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서 상선 수주가 끊기며 선주들이 발주를 꺼렸지만, 지금은 완성품 품질을 보고 신뢰가 되살아났다”며 “해외 선주들이 ‘예전 한진의 품질이 돌아왔다’고 평가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 "영도는 다시 조선의 현장으로"
영도조선소 현장에는 필리핀 용접공들이 눈에 띄었다. HJ중공업은 과거 수빅조선소에서 함께 근무했던 숙련 인력 중 상위 기술자 200명을 선별해 영도조선소에 직영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상선과 특수선 건조 현장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유 대표는 "언어와 종교가 통일돼 작업 효율이 높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시가 명확하다"며 "다른 조선소는 여러 국적이 섞여 종교나 식사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우리는 필리핀 인력만 고용해 관리가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숙련 인력 덕분에 생산성은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조선소의 물리적 제약은 여전히 존재한다. 영도조선소는 부지 면적 한계로 100t급 크레인을 주로 사용하며, 대형 골리앗 크레인(1000t 이상)을 설치할 수 없는 구조다. HJ중공업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대 3000t급 해상크레인을 활용한 신공법을 개발했다. 도크에 뜬 선박을 곧바로 암벽에 대고 나머지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안벽(암벽) 부족과 전력 증설 등 인프라 보강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금융·정책 지원도 절실하다. 유 대표는 "국내 중소조선소가 없다면 결국 중국에서 작은 배를 들여와야 하고, 그 부담은 국내 해운사가 져야 한다"며 RG(선박인도보증) 확대와 국책은행의 적극적 보증을 요청했다. 조선기자재 업체의 70%가 부산·경남 지역에 몰려 있는 만큼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 부산항, 자동화·투자 확대…조선 생태계 회복 견인
부산은 국내 해운·조선 산업의 중추이기도 하다. 부산항은 작년 기준 국내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77%(2440만TEU)를 처리하며 전국 수출입 물동량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부산항은 북항과 신항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북항은 동남아·일본 노선, 신항은 미주·유럽 노선 중심이다.
특히 북항에는 HJ중공업 영도조선소와 인접한 신선대·감만터미널(BPT)이 위치, 조선·정비 물류와 해운 인프라가 맞물린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터미널 운영사인 장금상선 계열은 오는 2029년까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자동화 장비와 스마트 운영 시스템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BPT는 안벽크레인 26기, 야드트랙터, 리치스태커 등 총 654기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동 GPS 인식·차량 안내 시스템, 지게차 충돌방지·Y/T 어라운드뷰 등 지능형 안전설비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성 30% 향상, 컨테이너 처리 능력 4000TEU 이상 확대가 기대된다.
정부도 2030년까지 5조원 규모의 항만 인프라 고도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북항과 영도조선소 일대에는 MRO·수리조선·스마트항만 클러스터가 결합된 산업벨트 조성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부산항에는 약 1만2800여 개 해운·항만 관련 사업체가 활동 중으로, 자동화·확장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지역 조선·해운 산업 회복세를 견인할 핵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 본 기사는 (재)바다의품과 (사)한국해양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