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중국에 이어 유럽이 해상용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에 속도를 내면서 조선·원전 기술 강국들 간 패권 경쟁이 불붙고 있다. SMR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HD현대가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뉴클레오(Newcleo)'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개막한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에 선박용 SMR 'TL-40' 실물 크기 모형을 전시했다. 뉴클레오와 함께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Fincantieri)', 디자인 기업 '피닌파리나(Pininfarina)' 등 유럽 3개 기업이 공동 개발한 성과다.
TL-40은 뉴클레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해상용 SMR이다. 리드냉각 고속로(LFR)를 기반으로 한 4세대 제품으로, 대형 선박 추진은 물론 격오지(off-grid) 전력 공급을 위한 독립형 발전 설비로도 사용 가능하다. 수동적 안전장치와 다단계 재활용 기술을 통해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까지 확보했다는 게 뉴클레오의 설명이다. 기존 원전에서 발생한 폐연료를 재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도 있다.
뉴클레오는 지난 2023년부터 핀칸티에리와 해양 적용 가능성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해왔다. 향후 TL-40을 활용한 해상 원자로 실증 사업과 유럽 내 원전 연료 개발 센터 설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SMR 선박 시장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각국은 기술력 확보와 상용화 속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국제적 기준 정립 움직임도 시장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국제해사기구(IMO)를 중심으로 해상 SMR 관련 기준과 규범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선도 기술이 국제 표준에 반영될 수 있느냐가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HD현대가 해상용 SMR을 그룹 차원의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낙점하고 선제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으며, 조선과 원전 양 축을 연결하는 형태로 시너지를 모색 중이다.
HD현대는 2030년까지 선박용 SMR을 개발하겠다는 목표 아래, 지난 2월 1만5000TEU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 모델을 공개했다. 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SMR과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선박 동력원 개발에 총 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파트너십도 강화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미국 SMR 전문기업 '테라파워'와 나트륨냉각 고속로(SFR) 상업화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해상 SMR 개발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려 SMR 추진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가장 일찍부터 해상용 SMR 시장에 뛰어든 곳은 중국이다. 국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중공그룹(CSSC)은 지난해 해상용 SMR 실증선 건조에 착수했다. 하이난성 창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상업용 SMR의 시험 가동이 이뤄졌다. CSSC는 2023년 세계 최대 규모인 2만4000TEU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를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