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비트 수가 전체 D램 판매 중 싱글디짓(한 자릿수)에서 더블디짓(두 자릿수)으로 올라와 수익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26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지난해 최고 실적을 낸 고객사 엔비디아와 달리 9조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배경을 묻는 주주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엔비디아는 서버용 인공지능(AI) 칩 판매 확대로 호실적을 거뒀다. 작년 4분기에 매출 221억 달러(약 30조원), 영업이익 136억 달러(약 18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5%, 983%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 영업이익 346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으나 순손실(1조3795억)은 피하지 못했다. 작년 전체로 보면 연결 기준 9조14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곽 사장은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HBM의 매출 비중이 크지 않아 실적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봤다. 반면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이 하락하면서 실적에 큰 타격을 줬다.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해 성과를 냈다. HBM 매출액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더블데이터레이트(DDR)5는 4배 이상 뛰었다.
올해는 HBM을 중심으로 수익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곽 사장은 "AI 서비스가 멀티모달로 진화할수록 이를 구현하기 위한 메모리 용량은 큰 폭으로 확대된다"라며 "컴퓨팅 요구사항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고객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12단 HBM 4세대(HBM3)를 개발하고 이달부터 5세대(HBM3E)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차세대 제품인 6세대(HBM4)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곽 사장은 "AI 선도 기업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HBM 1등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라고 자신했다.
업황은 나아지고 있다. 곽 사장은 "메모리 시장이 깊은 불황을 지나 수요 개선과 공급의 안정화를 통해 시장 회복기를 맞이하고 있다"며 "미국 기준금리는 연내 하락할 것으로 기대되며 소비 심리 회복으로 IT 수요가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DDR5로의 세대교체도 본격화된다. SK하이닉스는 초고용량인 256GB 제품을 공급해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향후 모바일과 오토모티브 시장에서 저전력 DDR5(LPDDR5) 판매를 확대하고 GDDR7을 적기 공급한다. 낸드플래시 사업은 점유율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전환한다. 오토모티브와 게이밍,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고수익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한다.
이날 주총에서는 미·중 갈등을 비롯해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공장을 보유해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의 영향권에 들었다. 지난해 미국 정부로부터 수출통제 예외를 인정받아 미국산 장비도 들여올 수 있게 됐다.
곽 사장은 "1a나노미터까지 D램 생산이 가능한 라이선스를 받아 정상적 생산 활동이 가능하다"며 "올해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은 작년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곽 사장은 최근 중국발전고위급포럼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장관과도 회동하며 중국 사업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곽 사장은 주총이 끝난 후 '중국 방문이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부담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략상 방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중국의) 경영 환경 및 정책 변화 등을 점검하고 반영할 만한 게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전략상 간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패키징 공장 투자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파이낸셜뉴스 등 외신은 SK하이닉스가 미국 첨단 패키징 공장 부지로 애리조나주가 아닌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 지역을 낙점했다고 보도했다. 40억 달러(약 5조4000억원)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주총에서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사내이사·사외이사·기타비상무이사·감사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임직원 퇴직금 지급 규정 개정 승인 등 안건을 가결했다. 장용호 SK㈜ 사장과 안현 SK하이닉스 솔루션개발 담당(부사장)을 각각 기타비상무이사와 사내이사에 신규 선임했다. 신규 사외이사로는 손현철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양동훈 동국대 명예교수가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