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예린 기자]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이 대표적인 유럽연합(EU) 배터리 규제인 '배터리 패스포트(Battery Passport, BP)'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일럿 프로젝트의 첫 성과가 가시화되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CATL 등 일부 기업의 배터리 정보를 추적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GBA)는 7일(현지시간) 10개의 배터리 패스포트 파일럿 프로젝트 결과를 공개했다. 배터리에 대한 기본 정보와 핵심 원재료 출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정보에는 △일련 번호 △배터리셀 유형 △무게 △용량 △기대 수명 △셀 생산자 △전기차 OEM △전기차 생산 국가 등이 포함된다. 재료 출처에서는 배터리 제조에 쓰인 원재료 종류와 채굴 국가, 재활용 원료 사용 비중 등을 다룬다. ESG 성과에서는 원료 채굴부터 배터리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생태계에 걸쳐 △온실가스 배출 △강제·아동 노동 △환경·인권 △생물 다양성 △원주민 권리 등을 준수했는지 살핀다.
GBA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7개의 디지털 솔루션 공급업체와 협력, △리튬 △흑연(인조) △알루미늄 △코발트 △구리 △인산철 △니켈 등 7가지 배터리 핵심 원재료의 출처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GBA의 배터리 패스포트는 기업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들이 제공한 지속가능보고서와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공개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공란으로 비워져 있거나 정보 공개가 보류된 상태라고 나타난다.
실제 결과가 공개된 파일럿 프로젝트에는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CATL △CALB △이브(EVE) △고션(Gotion) △핀드림스배터리 △선우다 등 8개 기업이 실제 납품한 배터리 혹은 가상의 배터리가 쓰였다. 이중 온실가스 배출과 아동노동 실태에 대한 데이터를 완벽하게 기재한 곳은 선우다밖에 없다. 다만 이 회사는 원재료 생산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한 파우치형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앞세웠다. 원재료와 관련해서는 리튬과 코발트의 원산지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리튬은 80% 호주산, 20% 브라질산을, 코발트는 100% 인도네시아산을 사용했다. ESG와 관련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데이터만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SDI의 프로젝트에는 가상 배터리(Virtual Battery)가 활용됐다. 삼성SDI가 만들었다는 것 외에 배터리 기본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재료와 관련해서는 코발트와 알루미늄이 쓰였다. 코발트는 일부 싱가포르산을 활용했고 나머지는 한국산이 투입됐다. ESG 성과에서는 아동노동에 대한 데이터가 기재됐다.
배터리 패스포트는 EU가 오는 2027년 2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배터리 산업 제도 중 하나다. 배터리의 성능과 상태, 원재료 조달 국가, 재활용률, 공급망 전반의 생산 이력 등의 정보를 전자화해 디지털상으로 기록·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도입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배터리에 부착된 QR코드와 같은 코드를 읽으면 사업자나 자동차 소유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배터리의 모든 정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의 상태나 성능·품질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또한 알 수 있어 중고차로서의 가치도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터리 패스포트는 지난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처음 제안됐다. 2022년 아우디와 테슬라의 주도로 1차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이듬해 WEF에서 결과가 발표됐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은 물론 완성차 제조사들도 도입을 결정하고 파일럿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잉가 피터슨 GBA 전무이사는 "우리는 2024년 배터리 패스포트 파일럿의 결과에 매우 기쁘다"며 "세계 최고의 셀 제조업체가 공급망을 동원하고, 경쟁 이전에 협력하고, 조화로운 지속 가능성 기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은 배터리 산업에서 더 큰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례 없는 헌신을 보여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