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한화그룹이 노르웨이 ‘REC실리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며 경영권 확보에 사실상 성공했다. 미국산 폴리실리콘 공급망을 구축,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그리는 '북미 태양광 사업 밸류체인'의 완성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REC실리콘 이사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한화가 제시한 공개매수 외에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이 없다"고 공식 인정했다. 공개매수 마감일은 8일까지로, 현재까지 추가 지분 확보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사회가 백기 투항에 가까운 입장을 밝히면서 경영권 인수가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이사회는 "한화 외에는 현실적이고 가용한 자금 조달 대안이 없으며, 시간적 제약과 법적 제한까지 고려할 때 본 제안(한화의 공개매수) 외에 추천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며 "한화가 기존 입장대로 회사 운영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REC실리콘 이사회가 이같이 판단한 것은 회사가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투자은행을 통해 대체 자금조달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기존 대출로 인해 자산 대부분이 담보로 묶여 있어 다른 방안은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한화가 인수가 완료되지 않으면 추가 대출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REC 입장에선 한화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REC실리콘은 미국 워싱턴주 모지스레이크 공장에서 생산한 폴리실리콘을 한화솔루션의 미국 조지아 공장에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품질 인증 실패로 출하에 차질이 생기며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REC실리콘은 지난해 약 623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연내 채무 상환과 운영자금 확보 모두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워터스트리트캐피털은 한화가 REC실리콘과의 폴리실리콘 공급계약을 돌연 해지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수 과정을 견제했다. 해당 펀드는 지난달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을 교체하고, 계약 해지 경위에 대한 회사 조사를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이사회마저도 결국 한화의 자금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이사회는 "현재까지 확보된 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약 해지는 상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 외에 명확한 반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REC실리콘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태양광 밸류체인의 핵심 연결 고리로 삼은 회사다. 한화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하에서 모지스레이크 공장을 북미 폴리실리콘 생산 거점으로 확보하려 했지만 계약 해지와 생산 차질로 위기를 맞았다. 이번 경영권 확보를 통해 한화는 북미 태양광 공급망 내 입지를 재정비하고, 글로벌 태양광 사업에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는 REC실리콘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지분 100% 확보를 목표로 지난 4월 공개매수를 제안했다. 제안가는 주당 2.20노르웨이크로네(NOK)로, 총 인수가는 약 1270억 원에 달한다. 지난달 말 기준 약 41.5%의 수락률을 확보한 상태다.
앞서 공개매수 성사를 위해 필요한 90% 이상 지분 확보를 앞두고 일부 소액주주들이 "기업가치에 비해 매각 가격이 낮다"고 반발하며 절차가 난항을 겪었다. 이사회 역시 이번 공개매수가 REC실리콘의 잠재 자산 가치와 대체에너지 산업의 성장 전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한화에 제안가 인상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