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전기자동차(EV) 시장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북미는 자국 중심의 EV생태계를 빠르게 성장시키며 투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 EV 생태계에서 국내 기업들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내 각 주정부는 국내 기업의 북미 시장의 성공적인 진입과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더구루는 미국과 캐나다 주정부 주요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토대로 한 북미 EV생태계 구축 과정을 살피고,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한국 EV산업 북미 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요동치는 북미 전기차 시장, 韓 기업 전략적 선택은?
② '美 전기차 시장 관문’ 미시간, '전 수명 주기' 밀착 지원
③ '100년 미래' 꿈꾸는 美 테네시, 캐시보조금은 '덤', 진짜는?
④ 노엘 켄터키주 경제개발부 장관,  韓 배터리 '스피커' 자처
⑤ '광물 부자' 캐나다 퀘벡, 친환경으로 더하는 강력한 '시너지'

 

[더구루=정예린 기자] "한국 기업이 미국 진출시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인력과 공사비이지만, 저는 오히려 주정부가 아닌 공장이 들어서는 카운티나 시 정부가 얼마나 협조를 잘 해주느냐를 가장 염려하라고 조언합니다. 테네시주는 주부터 지역정부까지 모두가 적극 나서서 기업을 지원하고 끊임없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신희정 테네시주 주정부 한국사무소 대표는 지난 5일 부터 사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 본지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투자 지역 확정 후 인허가 절차 등 절차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만큼 장기적인 시각으로 다양한 요소를 살펴 투자처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함께 인터뷰에 참여한 미 연방정부 산하 테네시유역개발청(TVA)의 윌 웨스트 자동차 산업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Target Market Specialists)역시 "우리는 기업들이 5년, 10년이 아닌 40년, 50년, 100년 동안 거기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과 끊임없이 협력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며 "한국 기업들은 공장 설립부터 운영까지 빠르게 진행하는 것을 원하는데, TVA는 많은 선행 투자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속도를 맞출 수 있다"고 부연했다. 

 

테네시주 주정부 한국사무소는 테네시주 경제개발부 소속으로, 테네시주를 프로모션하고 투자 유치를 담당하고 있다. TVA는 연방정부 산하 전력 회사로,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지역 내에서 원활히 운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제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네시주 경제개발부와 TVA는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업들이 테네시주 내에서 원활하게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 지역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 테네시, '캐시 보조금' 앞세워 투자 유치 활발…韓 기업 중요성↑

 

신 대표는 테네시주가 제공하는 지원 방안의 차별점으로 '현금 지급'을 강조했다. "다른 주들에서도 법인세, 재산세, 전기료 감면과 같은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만, 테네시주만큼 적극적으로 '캐시 보조금'을 제공하는 주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현금 보조금은 TVA가 제공하는 성과보조금 제도인 '워크포스플러스(Workforce+)'다. 워크포스플러스는 투자금액, 신규 고용 창출, 인력 교육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업에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주정부가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테네시주 측 설명이다. 

 

테네시주 내 숙련된 인재를 양성하고 경제 개발 프로젝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기업들은 5년 동안 △지역 평균을 초과하는 평균 연봉 △승인된 인재 양성 계획 보유 △최소 250만 달러의 자본 투자 또는 25명의 신규 정규직 채용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테네시주의 기업친화적 정책은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테네시주 내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직접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해외 국가다. 웨스트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는 "한국은 우리가 협력하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외국인 직접 투자국 중 하나”라며 "전기차 산업 관련 한국 기업 투자 대부분이 지난 4년 내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한국 기업의 투자 모델은 합작부터 단독 공장 설립까지 다양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각각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합작 공장을 가동 중이다. △LG화학 △알루코 △동화일렉트로라이트 △엔켐 △덕산일렉테라 △유니테크 △한온시스템 △성우하이텍 등 배터리 소재·부품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사까지 둥지를 틀어 현지에 'K-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2조7000억원을 투자해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연간 50GWh 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1회 충전 시 500km 이상의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60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생산량 갖춘다. 블루오벌SK는 테네시주 스탠튼 일대 1553만㎡(470만 평) 부지에 연간 43GWh 규모의 테네시 공장을 착공했다. 작년 하반기 시운전에 돌입했으며 올 하반기 대량 생산에 착수한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 170만㎡ 부지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연 6만톤(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알루미늄 부품 소재 전문기업 '알루코'는 매디슨카운티 잭슨시에 알루미늄 배터리 케이스 제조 공장을 짓고 블루오벌SK 물량에 대응한다. 알루코는 지난해 3월 블루오벌SK에 오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총 6억6140만 달러(약 951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모듈케이스 프로텍트프레임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웨스트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는 "한국의 투자 규모는 매우 크고 우리는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SK온과 포드의 '블루오벌시티' 프로젝트는 서부 테네시 지역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고, 알루코의 투자는 잭슨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테네시, 美 'K-배터리 벨트' 버클…텍사스 전력 사고 테네시선 'NO'"

 

테네시주는 △미시간 △인디애나 △오하이오 △켄터키 △조지아와 함께 미국 내 'K-배터리 벨트'로 불린다. 한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주요 투자처인 전기차 산업 중심지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주요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배터리 생산시설을 설립해 이 지역을 중요한 산업 허브로 만들면서 이같은 별칭을 얻었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기반과 양질의 인력, 정부의 지원 등까지 결합돼 미국 배터리 산업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테네시주가 배터리 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다. 테네시주는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지역으로, 95개 카운티 중 89개 카운티에 2개의 완성차와 1000여개의 협력사가 위치하고 있다. 인구의 상당수가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신 대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자동차 프레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며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테네시주는 굉장히 많은 실업자를 양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인력을 전기차 배터리 산업으로 대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와 웨스트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는 테네시주가 자동차 산업의 오랜 역사와 강점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양질의 인력 △경쟁력 있는 유틸리티 비용 △풍부한 산업 용수 △뛰어난 송전률을 내세웠다. 또 4개의 주요 완성차 OEM사가 위치한 테네시주는 고객사와의 인접성도 강점으로 작용하며, 해당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산업 인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웨스트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는 "TVA는 저비용 전기를 제공하는데 이는 제조업체들이 비용을 낮추고 수익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깨끗한 에너지도 제공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저희 시스템에 가입한 첫날부터 탄소 발생이 없는 전력 사용 비율이 60%에 달하게 된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테네시주와 TVA 간 협력을 통해 상당한 전력 인프라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보통 미국의 전기 회사는 사기업이 많은 반면 K-배터리 벨트의 버클인 테네시주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전력 공기업인 TVA가 전력을 납품한다"며 "TVA의 송전율은 99.9999%에 달하므로 과거 텍사스에서 발생했던 그런 전력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 트럼프 2.0 시대 美 전기차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1월 취임 이후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및 친환경 정책 철회를 추진하면서, 미국 전기차 산업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대거 미국 투자를 결정한 배경이 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투자 속도 조절 움직임이 감지되자 테네시주도 부랴부랴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IRA 폐지가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신 대표는 "IRA는 이미 작년에 논의가 끝난 사안이라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신 대표는 "테네시주는 주 상원의원 2명이 트럼프 행정부와 매우 친밀한 사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슈가 있다고 해도 경제적인 성장이 담보된다면 절대 막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내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의 성장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산업이 우상향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웨스트 타겟마켓스페셜리스트는 "전기차 산업은 다소 속도가 조절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대형 자동차 기업들이 이미 공장을 설립하고 투자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 자체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시장 내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캐나다와 비교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신 대표는 "캐나다는 연방정부랑 주에서 양쪽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했기 때문에 미국이 굉장히 열세지만 캐나다가 더이상 전기차 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며 "또 캐나다가 시장 자체에서도 멀어지고 있어 앞으로 미국이 훨씬 더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테네시주가 인터배터리 2025에 참여한 이유도 전기차 산업에 대한 우려와 달리 미국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신(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추가적인 투자나 사업 확장, 신규 진출 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LG화학, 알루코 등 기존 진출한 기업들과 만나 인사를 나눴고 신규 기업들도 만나 투자 유치 활동을 펼쳤지만 어느 기업인지는 밝히기 어렵다"며 "다만 인터배터리 2025 참여를 통해 기존 기업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동남부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업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