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전기자동차(EV) 시장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북미는 자국 중심의 EV생태계를 빠르게 성장시키며 투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 EV 생태계에서 국내 기업들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내 각 주정부는 국내 기업의 북미 시장의 성공적인 진입과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더구루는 미국과 캐나다 주정부 주요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토대로 한 북미 EV생태계 구축 과정을 살피고,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한국 EV산업 입장에서 북미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요동치는 북미 전기차 시장, 韓 기업 전략적 선택은?
② '美 전기차 시장 관문’ 미시간, '전 수명 주기' 밀착 지원
③ '100년 미래' 꿈꾸는 美 테네시, 캐시보조금은 '덤', 진짜는?
④ 노엘 켄터키주 경제개발부 장관, 韓 배터리 '스피커' 자처
⑤ '광물 부자' 캐나다 퀘벡, 친환경으로 더하는 강력한 '시너지'
[더구루=오소영 기자] "한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적 지원과 우려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워싱턴에 명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3일 본지와 만난 제프 노엘 켄터키주 경제개발부 장관은 한국 배터리 업체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업계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배터리 제조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현지에 투자한 기업들은 울상이다.
켄터키주는 미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순위에서 5위인 주다. 특히, 전기차 관련 117억 달러(약 17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SK온과 포드의 합작사인 '블루오벌SK'의 배터리 공장도 확보했다. 올해 37GWh 규모 1공장이 가동됐으며 45GWh 규모 2공장도 건설 중이다.

◇韓 고충 적극 청취…트럼프 행정부와 '핫라인' 구축
북미 배터리 거점으로 부상한 켄터키주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엘 장관은 "행정부 관계자, 상·하원의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있다"며 "(앤디 배쉬어) 주지사는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주에도 워싱턴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켄터키 주정부가 지향하는 '메신저'는 단순한 의견 전달에 그치진 않는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의 우려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를 전달해 정부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노엘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에 △켄터키에 투자한 기업 목록 △각 기업의 투자 규모와 고용 계획 △경제 성장에 기여할 예상치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의 영향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목소리도 켄터키 주정부가 연방 정부에 전달할 메시지의 근간이 될 데이터 중 하나다. 노엘 장관은 이번에 방한한 이유로 한국 기업들의 실질적인 고충을 청취하는 데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언급하며 "관세가 실제로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녹색 회귀 정책에 대해서는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배쉬어 주지사는 켄터키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환경 보호와 경제적 성공을 동시에 달성하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불필요한 관세 부과와 특정 정책을 철회하는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켄터키 주정부가 적극 목소리를 내는 건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노엘 장관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 켄터키주와 한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한미군 주둔을 언급하며 "(켄터키주와 한국이) 제조와 더불어 정치, 지정학적으로 얽혀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의 성장과 번영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가 안보에 기여한다"며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나노신소재 등' 21곳과 미팅…"韓에 큰 애정"
노엘 장관은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21개 회사와 미팅을 갖는다. 여기에는 켄터키주에 양극박 공장을 건설하는 롯데알미늄과 탄소나노튜브 도전재 생산시설을 짓는 나노신소재도 포함된다. 14곳은 켄터키주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잠재적 투자자들이다.
노엘 장관은 약 40여 년 전 대학 졸업 직후 한국으로 출장을 왔던 경험을 회고하며 "한국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첫 직장에서 농산물 판매 업무를 맡아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첫 직장에서의 경험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와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블루오벌SK는 켄터키주의 자랑거리다. 노엘 장관은 "각각(1공장과 2공장) 미식축구장 70개를 합친 규모"라며 "1공장은 850명을 고용했다"고 강조했다. 2공장까지 가동되면 약 5000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총투자비는 50억 달러(약 7조2700억원)에 달한다.
노엘 장관은 블루오벌SK가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전기차 산업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117억 달러 상당 신규 전기차 관련 프로젝트를 확보했고, 1만252명의 신규 고용이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다만, 블루오벌SK의 2공장 가동은 2026년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전기차 캐즘이 지속되면서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다. 노엘 장관은 2공장 가동 시점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 언급은 피하면서도 "SK온, 포드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켄터키 주정부는 경영진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적절한 시기가 되면 2공장도 성공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노엘 장관은 "켄터키주가 120년 이상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면서 "자동차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든 우리는 반드시 그 흐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켄터키주는 1913년 포드가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설립한 후 제너럴모터스(GM), 토요타 등 4개의 OEM 공장을 유치했다. 자동차 부문에서 총 560개 공장, 10만3000명의 종사 인력이 있다. 풍부한 자동차 산업 인프라와 함께 지정학적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켄터키주에서 차로 하루 안에 이동 가능한 도시의 인구를 합치면, 미국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한다는 게 노엘 장관의 설명이다.
아울러 노동력이 풍부하다. 켄터키주의 제조업 종사 인력 비중은 12.6%로 미국 전체 평균(8.4%)보다 높다. 또한 켄터키주에서 차로 6~7시간 거리에 공학 대학이 25개나 있어 우수한 인재 수급에 용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