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전기자동차(EV) 시장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북미는 자국 중심의 EV생태계를 빠르게 성장시키며 투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 EV 생태계에서 국내 기업들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주정부는 국내 기업의 북미 시장의 성공적인 진입과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더구루는 미국과 캐나다 주정부 주요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토대로 한 북미 EV생태계 구축 과정을 살피고,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한국 EV 산업 입장에서 북미 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요동치는 북미 전기차 시장, 韓 기업 전략적 선택은?
② '美 전기차 시장 관문’ 미시간, '전 수명 주기' 밀착 지원
③ '100년 미래' 꿈꾸는 美 테네시, 캐시보조금은 '덤', 진짜는?
④ 노엘 켄터키주 경제개발부 장관, 韓 배터리 '스피커' 자처
⑤ '광물 부자' 캐나다 퀘벡, 친환경으로 더하는 강력한 '시너지'
⑥ 오하이오, 배터리·EV 산업 청사진 속 "韓 기업은 귀중한 파트너"
[더구루=오소영·정예린 기자] #1. "우리의 역할은 한국의 파트너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연방 정부에 전달할 것입니다." - 제프 노엘 켄터키주 경제개발부 장관-
#2. "한국은 지난 5년 동안 미시간 외국인 투자자 1위입니다. 한국에서 미시간으로 유입되는 투자의 80%가 전기차 분야에서 발생합니다.” - 레이첼 도널드슨 미시간주경제개발공사(MEDC) 매니징 디렉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북미 전기차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녹색 회귀' 정책을 표방하며 취임 직후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배터리 인센티브를 포함하는 친환경 산업 육성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북미 전기차 시장이 위축되고, 뜨거웠던 투자 심리도 가라앉는 분위기다.
북미 주요 주정부는 한국 배터리 업계의 '눈과 귀'를 자처하며 해결사로 나섰다.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코리아' 기간 본지와 만난 주요 주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을 중요한 투자 파트너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 'IRA 호재'에 북미 투자 '쑥쑥'
미국 기업인 테슬라가 전기차 시대를 열었으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생산은 제한적이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2010년대 초반까지 순위권 밖이던 미국은 2022년 중국과 폴란드에 이어 세계 배터리 생산국 3위에 등극한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는 오는 2027년 미국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배터리 생산능력을 보유할 것이라 전망했다.
배터리 수입국에서 제조국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의 잠재력이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중국, 유럽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전기차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모터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 중 전기차·하이브리드 차량 비중은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SNE리서치가 발표한 지역별 전기차 인도량도 지난해 183만6000대로 1년 사이 10% 이상 성장했다. 이는 역성장한 유럽과 대조됐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도 한몫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할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지원할 정책으로 2022년 8월 IRA를 발표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IRA는 전기차 세액공제의 전제 조건으로 북미에서 생산하거나 조립된 배터리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활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터리 생산과 관련, 미국 내 생산·판매하는 셀과 모듈에 각각 kWh당 35달러, 10달러를 공제한다고 명시했다.
IRA 발표 이후 미국은 중국을 제치고 최대 배터리 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 시장조사업체 로듐그룹과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분석 결과, IRA 발효 후 미국은 청정 에너지와 전기차 제조 분야에서 1330억 달러(약 190조원) 상당 투자를 확보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북미 진출은 두드러졌다.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은 바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은 미국에 단독·합작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연내 가동 예정인 배터리 공장 10곳 중 6곳을 한국 기업의 투자 건으로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작년 5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생산능력이 2023년 117GWh에서 2027년 635GWh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 "바이든 전기차 공약 원점으로"…트럼프 '리스크' 대두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진출에 역점을 뒀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전기차 우대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었다.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대선 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IRA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다만, IRA로 투자를 유치한 공화당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를 고려할 때 폐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청정 경제 전문 리서치 기관인 E2 클린 이코노믹 웍스에 따르면 IRA 제정 후 미국 내 총 362개 청정에너지 프로젝트가 발표됐는데, 224개는 공화당 지역구에서 유치한 프로젝트였다.
IRA가 원점으로 돌아가진 않더라도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 전기차 산업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는 크다. 실제 트럼프 1기 시절에도 자동차 연비와 환경 규제를 풀면서 미국 전기차 산업은 타격을 입었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2017년 말 20%에서 2020년 18%로 줄었다. 그 사이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으로 성장하면서 미국과 격차를 벌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국제청정운송수단협회(ICCT)는 정부 정책의 차이를 꼬집은 바 있다.
트럼프 1기 시절이 재현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위기를 맞았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캐즘에 따른 수익 하락을 IRA 보조금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IRA가 수정되면 실적 하락은 불가피하다. 미국 배터리 투자 속도도 조절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국내 배터리 산업 지원책을 마련했다. 올해 자동차와 배터리 분야 금융 지원에 총 2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약 7조9000억원을 이차전지 산업에 편성했다. 전기차 핵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에도 4300억원을 투입한다.

◇ 美 주정부, 韓 기업 우려 불식 위해 발 벗고 나서
미국 주정부에서도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자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인터배터리 2025'에 참가한 한 미국 주정부 관계자는 올해 8개 주정부에서 부스를 꾸린 것에 대해 "IRA 폐지 등 미국 전기차 시장 진출 관련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라고 귀띔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켄터키 △미시간 △오하이오 △애리조나 △테네시 △조지아 △인디애나 등 8개 주정부가 주한미국대사관 주도로 '인터배터리 2025'에 참여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삼은 것이다.
배터리와 전기차 공장이 밀집한 조지아, 테네시, 미시간, 켄터키, 오하이오 등의 주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금 면제 혜택 유지 △인프라 투자 확대 △기업 지원 프로그램 다변화 등을 통해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 비용과 인력 확보가 한국 기업들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가운데 주정부는 인력 양성 측면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켄터키주는 SK온과 포드 간 배터리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인력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엘리자베스타운 커뮤니티앤테크니컬 대학(ECTC) 블루오벌SK 교육센터'를 건설했다. 작년 오픈한 이 센터는 총 2500만 달러(약 360억원)의 건설 자금을 전액 주정부가 부담했으며, 블루오벌SK가 운영하는 켄터키 1·2공장에서 신규 고용할 약 5000명의 직원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이밖에 테네시주는 테네시 공과대학과 협력해 배터리 인재 육성을 위한 맞춤형 교육 과정을 신설했다. 미시간주는 미시간주립대학교와 전기차·배터리 기술 관련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와 '배터리혁신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연구와 인력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