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산 포토레지스트(PR)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대체재를 찾기 어려워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세운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 청사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7나노 EUV 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개발이 늦어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관련 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포토레지스트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워져서다.
마크 리(Mark Li) 미국 번스타인 리서치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최첨단 칩 양산을 위해 하이앤드 포토레지스트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우려가 존재한다"며 "일본의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소재다. 어느 공정에 쓰이냐에 따라 종류별로 나뉘는데 D램에는 ArF 레지스트, 3D 낸드플래시에는 KrF 레지스트가 사용된다.
일본이 규제 대상으로 삼은 건 EUV용 제품이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JSR, 신에츠, TOK 등에서 주로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규제에 따라 정부 허가 없이 포토레지스트를 수출할 수 없게 됐다. 매번 수출 건당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심사에 90일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수출 규제를 우회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일본 TOK는 경기 평택에 생산 공장이 있지만 EUV용을 제조하려면 일본에서 원재료를 받아야 한다. JSR은 벨기에에 생산설비가 있다. 다만 벨기에 공장에서 한국 업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재고를 축적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포토레지스트는 개봉 후 사용 기간이 수주 정도여서 방대한 양을 쌓아두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대체재 개발 또한 만만치 않다. 핵심층에 도포되는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제품이 기술적으로 앞선다. 국내 동진쎄미켐이 EUV용을 개발 중으로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실제 납품까진 일정 기간이 소요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포토레지스트를 대체할 소재를 찾을 수 있지만 이를 쓰려면 칩 설계와 제조 공정을 다시 테스트해야 해 1년이 넘게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일본은 추가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삼성전자는 긴장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추가 규제 가능성이 높은 품목은 집적회로(IC), 전력반도체(PMIC), 리소그래피 장비, 이온주입기, 웨이퍼, 블랭크 마스크 등이다.
블랭크 마스크는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마스크의 원재료로 EUV용 제품은 일본 호야가 독점 생산하고 있다. 웨이퍼 또한 일본 업체의 점유율이 높아 대체재를 찾기 힘들다.
일본이 규제 강도를 높이며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인 TSMC 추격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지난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48.1%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19.1%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TSMC를 제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핵심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비메모리에 쏟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중 98조원을 파운드리 분야에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