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생태계=미래 일자리] ⑬ EV 충전 인프라…3·4차 서비스 산업 확대 '마중물'

오승준 SK시그넷 미 법인장 인터뷰
美 43개 주에 SK시그넷 충전기 설치돼
향후 5년간 연평균 27% 성장 '자신'

 

전기차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생태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는 곳은 북미 지역입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조금을 앞세워 자국 내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다양한 혜택을 내세워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을 품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더구루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 고등 교육기관 등을 접촉해 △정부 정책 △현지 파트너사 간 이해관계 △배터리 등 공급망 주도권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기여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한국 산업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버지니아(미국)=정예린 기자] "미국 전기차 충전기 시장은 전기차 보급률과 직결된다. 충전 인프라 없이 전기차 산업은 완성될 수 없다."

 

오승준 SK시그넷 미국법인 법인장은 지난달 버지니아주 사무실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충전 시장 전망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량을 아무리 늘려도 운전자의 편의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산업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단순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 성격이 확장되는 계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기차 주행거리가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충전망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크다. 충전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유통사, 부동산 개발 회사 등까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규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들의 눈은 한 곳을 향하고 있다. SK그룹의 투자 전문 지주사인 SK㈜가 지난 2021년 인수, 자회사로 편입시킨 급속 충전 솔루션 회사 'SK시그넷'이다. SK시그넷은 밀려드는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고객사가 오히려 물량을 '읍소'하는 형국이다.

 

 

◇ 美 전역에 깔린 SK시그넷 충전기…"최소 30% 성장"

 

# '달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충전기 전면 디스플레이에서 차량과 충전기가 연결됐다는 문구가 뜬다. 충전시 차량 정보와 배터리 잔량, 완충까지 남은 시간부터 충전 후 전기 사용량, 충전 속도, 비용까지 확인 가능하다. 

 

SK시그넷 미국법인 사무실이 위치한 버지니아주 한 월마트에 설치된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EA)의 충전기로 포드 머스탱 마하-E를 충전해 봤다. SK시그넷이 EA에 납품한 가장 최신 충전기를 사용했다. 배터리 잔량 71%에서 약 7분 만에 80% 이상이 충전됐다. kWh당 48센트로 계산돼 판매세 적용 전 약 4달러의 비용이 발생했다. 

 

기자가 이용한 충전소에는 총 4대의 EA 충전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차데모 방식의 오래된 충전기부터 최신 충전기까지 배치됐다. 충전을 시작하고 5분 남짓 지나자 4개의 충전기가 모두 차 다음 사람을 위해 얼른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SK시그넷 충전기는 미국에서 테슬라의 슈퍼차저 다음으로 많이 설치됐다. ADL 리포트에 따르면 슈퍼차저를 제외한 SK시그넷의 미 초급속 충전 시장 점유율은 작년 7월 기준 34.7%에 이른다. 올 6월 말까지 50개 주 중 SK시그넷 충전기가 아직 보급되지 않은 지역은 7곳에 그친다. 

 

SK시그넷은 북미 급속 충전기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기술이 성숙해 경쟁자가 넘치는 완속 충전기 대비 급속 충전기는 전 세계 사업자가 40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한정하면 급속 충전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20곳 정도다. 

 

오 법인장은 SK시그넷을 소위 '박힌 돌'이라고 표현했다. 전기차도 익숙하지 않던 2016년부터 충전 사업을 펼쳐 온 터줏대감이라는 것이다.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한 경험치와 기술력이 전기차 산업 성장 흐름과 맞아 떨어지면서 잠재력을 터뜨리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는 "작년 미국에서 발표한 고객사는 3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곳에 달하고, 신규 고객사들은 초기에 공격적으로 나서기 때문에 큰 물량의 수주가 기대된다"며 "다만 현재 주문이 몰려 들어 지금 주문해도 최소 30주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충전기 시장은 앞으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7%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SK시그넷은 작년 50% 성장했고 올해 최소 30% 이상 성장하고 향후에도 시장 성장률에 준하는 수준으로 커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갈 길 멀었다'…규격화부터 보조금까지 

 

오 법인장은 전기차 충전기 산업 확대 걸림돌로 '표준 규격 미비'를 꼽았다. 통일된 규격이 없다 보니 자동차 OEM 별로 충전 포트 위치가 다른 문제부터 정부 보조금 제도가 정착되지 않는 것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잇따른다는 지적이다. 

 

충전 규격은 △차데모(CHAdeMO) △결합충전방식(CCS) △북미충전표준(NASC) 등 크게 3가지가 있다. 차데모는 가장 오래돼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CCS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점찍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NASC는 테슬라 슈퍼차지에 적용되는 규격이다. 최근 테슬라가 NASC 방식을 오픈 소스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차세대 충전 규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SK시그넷은 CCS 방식을 채택해왔으나 최근 NACS를 연내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두 규격을 모두 취급해 충전기 보급 확대에 앞장, 초기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겠다는 포부다. 켄터키주 등 주정부가 앞으로 출시할 충전기는 CCS와 NACS를 모두 지원해야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하고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다만 오 법인장은 이같은 문제가 단기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충전 사업자들이 변압기 등 부품을 조달하지 못하거나, 리테일 업체들이 충전 사업에 직접 진출하기 위해 주차장을 내어주지 않는 문제 등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다 해결돼 연간 성장 목표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시그넷은 미국 정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정책(NEVI)의 수혜를 받는 첫 기업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텍사스주에 마련한 해외 첫 생산 공장 덕분이다. 당초 지난 6월 가동을 목표로 했으나 충전기 신제품 안전 인증 작업이 지연되면서 양산 시점도 늦어졌었다. 지난달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했다. 

 

NEVI는 미국 고속도로에 약 80km(50마일) 마다 전기차 충전소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미국 정부는 충전소 구축 사업자에 연 10억 달러를 지급한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여야 한다. 충전기에는 미국산 철강 등 현지에서 조달한 소재와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 

 

오 법인장은 "SK시그넷은 NEVI 보조금 집행 시기와 수주 규모에 따라 텍사스 공장 물량을 적절히 조절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주 등 대도시가 속한 주정부들이 아직 NEVI 정책 도입 발표를 하지 않았는데, 내년께 도입이 확정되면 여기서 나오는 물량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이에 맞춰 공장 케파를 최대한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 SK 자본의 힘…美 공장 부지 후보만 40개 

 

SK시그넷은 텍사스주 플레이노시를 첫 해외 공장 부지로 낙점했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오 법인장이 살핀 후보는 40여 곳에 달한다. 허허벌판부터 비어있는 공장까지 조건에 맞는 공간을 찾기 위해 텍사스주 외 캘리포니아주, 조지아주, 버지니아주 등 미 전역을 가로질렀다. 

 

현재 공장을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해 오 법인장은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SK시그넷 텍사스 공장은 원래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이 사용하던 공장이었다. 코로나19로 사업이 휘청이자 SK시그넷에 공장을 매각했고, 계약 체결 직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레이시온은 계약 철회를 요청했으나 SK시그넷에게 플레이노시는 첫 시작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특히 텍사스주에 공장을 지은 것은 전략적인 결정이었다. 텍사스주는 전통적으로 석유화학 산업이 발달된 지역인 만큼 전기차에 대한 반감이 미국 내에서도 강하다. 텍사스주에서 입지를 굳히면 다른 주로 넓히는 데 용이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 법인장은 "텍사스주는 미 전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임에도 충전소 분포가 가장 낮은데 이런 곳에서 시장을 점유하면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며 "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텍사스는 정 가운데 위치하고 물류 산업도 발달해 충전기를 미 전역으로 보급하는 데 쉽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조금으로 치면 조지아주나 테네시주 등이 텍사스주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안했는데 이들이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인센티브 외 다른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라며 "텍사스주 중에서도 플레이노시는 미국 내에서도 고등교육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도시인 만큼 우수 기술자 인력을 확보하기도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SK그룹에 편입된 후 시너지 효과도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오 법인장은 "미국 전기차 충전 사업은 고객사들이 레퍼런스와 각종 안전 인증, 미국 내 공장 등 요구사항이 많이 신생 기업이 수주를 따내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다"며 "실제 수익이 발생하기까지 버티는 것이 중요한데 SK시그넷은 자본력을 갖춘 모회사가 잘 지원해주고 있는 덕분에 비싼 임대료 등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SK시그넷의 직원 규모는 SK㈜ 인수 3년차인 올해 4배 규모로 성장했다. 2년 전 100여 명에서 현재는 400명에 이른다. 미국법인의 경우 오 법인장이 처음 법인 설립을 준비할 당시 근무하던 인원은 7명에 불과했다. 미국법인 본사와 텍사스 공장까지 합하면 현재 인력은 60명 수준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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