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에 우려를 표한 가운데 과거 LG와 민주당 정부의 악연이 회자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5대 그룹 7대 업종 구조조정계획으로 LG는 반도체 사업을 당시 현대전자에 넘겼었다. 배터리 다툼에서도 정부가 훈수를 두며 국가의 개입에 우려가 제기된다.
◇LG 반도체 아픔, 배터리도 되풀이?
반도체 사업은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아픈 손가락'이다. LG는 지난 1989년 금성일렉트론을 세우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1메가·4메가 D램 등을 개발하며 성장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4위, D램 6위로 도약했다. 이후 1995년 LG반도체로 사명을 바꾼 후 이듬해 상장을 추진했다.
LG의 공격적인 행보에 제동이 걸린 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절정기인 1998년이다. 김대중 정부는 5대 그룹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안이 포함됐다.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의지를 피력했지만 정부는 냉담했다. 결국 구 회장은 1999년 1월 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반도체 빅딜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해 4월 2조5600억원에 LG반도체를 넘겼다. 이후 현대반도체로 이름이 바뀐 후 2001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가 공교롭게 지난 2012년 SK그룹에 둥지를 틀어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됐다.
LG반도체와 정부 악연은 최근 재연되는 양상이다. 정 총리는 지난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인 LG와 SK가 미국에서 3년째 소송중인데 소송 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한다"면서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소송이 계속되면 남 좋은 일만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가 양사 최고책임자와 연락하고 만나서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했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큰 틀에서 산업 성장 방해' 정부 중재 우려
정 총리의 발언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소송 장기화로 인한 우려를 수용하며 원만한 해결을 강조했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대표는 28일 "배터리 산업이 회사의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와 관련 산업 생태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며 "그런 중에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에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적인 우려와 바람을 잘 인식해 분쟁 상대방과의 건설적인 대화 노력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날 오후 5시에야 입장문을 내고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다만 최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제안이 협상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인데 논의할 만한 제안이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합의의 전제 조건으로 SK이노베이션의 협상 의지를 거론하면서 SK이노베이션보다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양사의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의 중재를 비판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지적재산권을 비롯해 기업의 혁신과 밀접히 연관된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큰 틀에서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삼성·LG디스플레이의 다툼에서도 정부의 중재를 두고 말이 많았었다. 합의에 성공했지만 정부가 나선 게 디스플레이 산업에 득이었는지 여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았다.
삼성·LG디스플레이는 2012년부터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과 특허 공방을 지속했다. 당시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은 직접 양사 대표와 두 차례 개별 면담을 갖고 '대화로 풀자'고 설득했다. 이듬해 9월 양사가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하고 특허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와 관련,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선진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든 법에 의한 결론이 나오고, 이를 근거로 한 중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